원·엔 환율 100엔당 903원 8년만 최저
엔화 환전과 예금 등 투자에는 신중해야
일본 엔화가 약세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엔·달러 환율이 달러 당 144엔대까지 오르며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원화에 대해서도 근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러다 보니 환전과 예금 등 엔화에 대한 투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이 같은 엔저 현상이 대세일까, 아니면 한시적인 것에 불과한 것일까. 시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엔화 가치가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 만큼 지금 시점에서 엔화를 그저 많이 확보하는 게 최선의 투자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반면 일본중앙은행이 그동안의 통화 완화 정책을 재 점검하기로 하면서 엔화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도한 엔저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유로 든다.
이 같은 진단을 놓고 보면 일본 통화 당국이 엔저 현상을 막기 위해 엔화 매수에 나서는 등 외환시장 개입에 적극 나설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당장 개입을 하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편이다.
엔저에 따른 부정적 요인도 있지만 증시 활황과 수출 증대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 해소 등 여러 긍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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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엔화 투자가 늘고 있으나 유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 엔화 가치 하락, 왜 계속되나
일본 엔화 가치 하락 지속에는 통화 정책 요인이 가장 크다. 미국과 유럽이 당분간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데 반해 일본은 여전히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은행(일본은행)은 지난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하기로 했다. 이에 단기금리는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금리는 0% 수준을 유지했다.
사실 엔화 가치는 지난해 32년 만에 최저 치를 기록했다가 올해 초 강세로 전환했다. 하지만 통화 완화 정책 고수로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과의 기준금리 차이가 커지면서 지난 3월부터 약세 국면으로 전환됐다..
더욱이 일본은 작년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다 급격한 엔저로 무역수지 적자 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결국 엔화 매도세->엔화 가치 하락-> 엔저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 엔저로 엔화 환전·예금 급증
이런 엔저 현상에 원화를 엔화로 바꾸는 환전과 엔화 예금 등의 엔화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엔화 환전 규모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배 가까이 폭증했다. 지난달 4대 은행에서만 원화 2천732억 원 어치가 엔화로 환전됐다.
엔화 매도 역시 급증세다.. 국내 4대 은행의 지난달 엔화 매도 액은 301억6천700만 엔(약 2천732억 원)이다. 4월(228억3천900만 엔)대비 73억2천800만 엔 증가했다. 작년 동기(62억8천500만 엔)와 견주면 무려 4.8배나 늘어난 수치다.
이는 코로나 엔데믹으로 내국인의 일본 여행이 급증하면서 엔화 수요가 급증한 게 주요인이지만 환차익 기대가 높아진 탓도 있다.
엔화 예금도 40% 가량 늘었다. 이는 4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 기준에서도 드러나는데, 5월 말 현재 6천978억5천900만 엔에 달한다. 작년 6월 말 잔액(5천862억3천만 엔)에 비해 19% 증가했다.
물론 예금 잔액은 무역 결제 대금인 기업 예금이 상당수를 차지하지만 개인과 기업들이 엔화 강세를 예상하고 미리 엔화를 사두려는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엔저 현상, 언제까지 갈까
엔·달러 환율이 지난 27일 7개월 만에 달러당 144엔대를 돌파한 데 이어 29일에도 144엔대에 이르면서 엔화 약세가 지속되는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달러당 엔화 환율은 144.29로 전일 대비 0.13% 하락했지만 여전히 144엔대를 고수했다.
원·엔 재정환율도 지난 26일 100엔당 903.82원으로, 2015년 6월 26일(905.40원) 이후 근 8년 만에 최저치를나타냈다. 29일에도100엔당 903.35원으로 903원대를 유지했다.
엔저 현상은 일본 정부의 통화 완화 정책도 그렇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제롬 파월의장이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내 두 차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재확인한 것이 부채질한 셈이다.
일본 외환 당국은 엔저가 계속되자 잇따라 외환시장 개입을 시사했는데, 실제로 환율 방어를 위해 개입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다만 일본 정부가 작년 9월 엔화를 매수하며 시장에 개입했던 전례에 비춰 이번에도 시장 개입에 나설 수 있음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지난해 9∼10월 강달러로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150엔대에 이르자 24년 만에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매수하는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얼마 전 마사토 일본 재무성 재무관이 “급속하고 일방적 환율 움직임에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한 데 이어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도 “높은 긴장감을 갖고 주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가능성을 키운다.
반면. 일본 증시 상승과 함께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엔저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는 점에 방점을 둔다. 작년 엔화 약세로 일본 상장사들이 사상 최대 영업이익(39조1000억엔)을 기록했다. 이에 증시가 활황세인 것도 부담이다.
이케이225지수는 올 초에만 해도 2만7000엔대를 기록했던 것이 최근 3만3400엔대까지 뛰어 올랐다. 29일에도 전 거래일 대비 0.12% 오른 33,234.14로 장을 마감했다.
뿐만 아니다. 원유 등 원재원 가격 하락으로 작년 9월 2조엔 이상이었던 무역적자가 지난 5월 7000억 엔까지 줄어 엔화 약세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의 악재에서 벗어났다는 분석도 당국의 시장 개입 발목을 잡는 근거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엔저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일각에서는 달러당 엔화 가치가 145엔까지 떨어지더라도 정부가 개입에 나서지 않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엔화 투자와 예금은 신중해야
미국과 유럽의 통화 긴축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비해 일본은 통화 완화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을 이끄는 가장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원·엔화가 7년 만에 최저치를 보이고, 앞으로 100엔당 800원대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하지만 앞으로 엔화 강세를 노리고 하는 투자는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두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지적에 유의해야 한다.
최근 엔저 현상이 장기간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빠르면 올해나 내년에는 엔화가 약세를 벗어나 강세로 전환할 것이라는데 표를 던진다.
물론 시장에서는 이런 기조에 변화가 없다면 엔저 추세가 이어져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렇게 보면 엔화를 일종의 ‘안전자산’이라는 측면에서 투자할 수는 있지만 향후 엔화 강세를 노리고 투자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기대 만큼의 실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토요경제/이승섭 대기자 sslee7@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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