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거래는 길게, 결제는 짧게’…12시간·T+1 인프라 개편 속도

위아람 기자 / 기사승인 : 2026-09-29 18: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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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2027년 말 ‘단일 보드’ 구축…프리마켓 포함 12시간 거래 우선 추진
현행 T+2→T+1 논의도 본격화…외환결제·후선업무 정비가 선결 과제
▲29일 더그랜드롯데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에서 '한국 증시 선진화를 위한 핵심과제'를 주제로 패널토론이 진행 중이다 [연합뉴스]

 

국내 주식시장의 거래시간은 늘리고 주식 매매대금을 주고받는 결제기간은 줄이는 자본시장 인프라 개편이 동시에 추진된다. 한국거래소는 2027년 말까지 프리마켓·정규장·애프터마켓을 하나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12시간 거래체계를 우선 마련하고,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은 현행 거래 후 2영업일인 결제주기를 하루로 줄이는 T+1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거래시간 연장과 결제주기 단축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증권사 전산시스템과 외환결제, 기관투자자의 후선업무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시장 접근성 확대와 시스템 안정성 사이의 균형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29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공동 주관한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2026'의 '자본시장 인프라 선진화 방안' 세션에서는 거래시간 연장과 결제주기 단축을 중심으로 국내 증시 인프라 개편 방향이 논의됐다.

진동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2027년 말까지 프리마켓과 정규장, 애프터마켓 사이에서 미체결 주문의 효력이 유지되는 이른바 '단일 보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프리마켓을 추가해 하루 12시간 거래체계를 우선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시장 사이의 주문이 완전히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14일부터 정규장 종료 뒤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애프터마켓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규장에서 체결되지 않은 주문은 장 종료 후 취소된다. 투자자가 애프터마켓에서도 거래하려면 주문을 다시 내야 한다.

단일 보드가 구축되면 이 같은 시장 간 단절을 줄일 수 있다. 프리마켓에서 들어온 주문을 정규장과 애프터마켓까지 연결해 관리하는 방향으로 거래 인프라가 바뀌는 것이다.

거래시간 확대는 이미 첫발을 뗐다. 지난 14일 문을 연 한국거래소 애프터마켓에서는 첫날 1조8177억원어치가 거래됐다. 정규시장 거래대금의 8.03%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규장 종료 이후 기업 공시나 해외시장 움직임을 당일 가격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투자자 접근성도 넓어졌다.

다만 거래시간을 늘리는 과정에서 시장 유동성이 시간대별로 분산될 수 있다는 문제도 확인됐다. 애프터마켓 개장 첫날에는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변동성완화장치(VI)가 총 1637회 발동됐다. 정규장 당시 400회의 4배를 넘었다. 일부 중소형주는 거래량이 적은 상황에서 호가 공백도 나타났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이날 거래시간이 길어지면 유동성이 여러 시간대로 나뉠 수 있는 만큼 안정적인 시장 운영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앞서 거래시간 연장이 유동성 분산과 종목별 가격 왜곡, 시장감시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에 거래소는 과거 제시했던 24시간 거래체계로 곧바로 가기보다는 12시간 거래를 먼저 안정시키는 데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거래소는 지난 1월만 해도 2027년 12월을 목표로 24시간 거래체계를 구축하고 그 중간 단계로 12시간 거래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진 상무는 24시간 거래의 전면 도입 시기는 시장 안착 정도와 시장 참여자의 부담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거래시간을 늘리는 작업과 함께 결제시간을 줄이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현재 주식을 거래한 날을 T라고 할 때 실제 주식과 대금은 두 영업일 뒤인 T+2에 교환된다. 이를 T+1으로 단축하면 주식을 판 투자자는 현재보다 하루 일찍 매도대금을 결제받을 수 있고, 시장 참가자가 부담하는 결제 위험도 줄어들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결제기간 단축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가 2024년 T+1으로 전환했고 유럽 주요 시장도 2027년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금융투자협회 등이 참여하는 워킹그룹을 가동해 국내 도입을 위한 선결 과제와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6월 구체적인 T+1 로드맵을 올해 10월까지 마련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결제를 하루 앞당기는 것이 단순히 날짜만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가 변수다. 해외 기관은 주식을 매매한 뒤 원화를 조달하고 운용사와 수탁은행, 증권사 등이 거래내역을 확인한 뒤 결제 지시를 내려야 한다. T+1으로 전환하면 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시차가 있는 해외 투자자의 경우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거래한 뒤 현지에서 주문을 확인하고 원화 환전과 결제 지시까지 마쳐야 하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외환시장과 수탁·결제 시스템의 동시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피터 슈타인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 최고경영자는 이날 T+1으로 전환하기 전에 외환결제 등 관련 절차와 시스템을 먼저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제주기만 앞당길 경우 오히려 시장 참가자의 운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취지다.

티모시 쿠디히 미국 예탁결제원(DTCC) 최고위험관리책임자도 결제주기 단축의 목표를 단순한 속도가 아닌 '안전한 속도'에 둬야 한다며 해외 투자자의 자금 조달과 외환결제까지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역시 거래시간 연장과 T+1을 별개의 정책으로 접근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6월 '자본시장 인프라 혁신 점검회의'에서 결제주기 단축, 거래시간 단계적 연장 등 여러 개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기관별 시스템과 제도의 정합성을 함께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시스템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를 인프라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증시의 인프라 개편 방향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투자자는 더 오랜 시간 주식을 거래하고, 매매가 끝난 뒤에는 더 빨리 결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향이다. 다만 거래시간 연장이 실제 유동성 확대보다 유동성 분산으로 이어지거나 T+1 전환으로 외국인의 결제 부담이 커진다면 접근성 개선이라는 정책 목표와 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관건은 거래시간 자체를 얼마나 길게 늘리느냐보다 프리마켓·정규장·애프터마켓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결제주기를 단축하는 과정에서 외환·증권사·수탁기관·예탁결제 인프라를 동시에 정비할 수 있느냐가 될 전망이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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