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
축구만 사랑한 ‘채금석’
![]() |
| ▲ 1928년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우승하고 기념촬영한 경신축구팀. 아랫줄 맨 우측이 채금석 선생이다. <사진: 전북축구협회 제공> |
한국축구의 대부다. ‘고(故) 김용식’ 씨와 함께 일제강점기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살려 줬다. 조선인의 울분도 씻어줬다. 일본팀을 꺾으며 조선인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별명은 오토바이였다. 워낙 빨라서 붙여진 별명이다.
‘채금석’은 군산 영명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25년 서울 경신(儆新)중학으로 전학했다. 경신중학에서 김용식과 함께 축구를 했다. 두 사람은 훗날 한국축구의 양대 산맥이 된다. 선수시절 두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약속했다. 술, 담배, 도박, 여자, 잡기였다. 두 사람 모두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을 굳게 지켰다. 현재까지도 모든 축구인의 표상이 되고 있다.
채금석은 ‘광주학생항일운동’ 때 일본 경찰을 때려 퇴학 처분을 받았다. 경신중학 4학년 때였다. 1985년 경신중학 개교 100주년에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김용식은 보성전문으로 진학해 국가대표선수와 감독을 역임했다. 채금석은 1933년 경평(서울·평양)전에 출전해 승리의 주역이 됐다. 김용식과 호흡을 맞추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축구 천재 채금석은 해방 후 고향 군산으로 낙향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낙향 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꾸준한 체력관리로 53세까지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전북 대표로 출전해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채금석의 축구사랑은 후학양성으로 이어졌다. 군산의 초·중·고 선수들을 지도했다. 기본기 교육에 집중했다. 인성 함양을 위해 예절 교육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비를 들여 선수를 지도했다. 유망주도 발굴했다. 재능 있는 선수는 서울로 진학시켰다. 이런 열정으로 국가대표선수도 많이 배출했다. 최재모·강철·유동춘· 노상래 등 여러 선수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채금석은 1995년 12월 사망했다. 10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절친한 벗 김용식 곁으로 갔다.채금석과 김용식은 청교도처럼 살다 갔다. 친구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며 살았다. 하늘에서도 채금석과 김용식은 축구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일제의 억압에 맞섰던 항일의 정신을 되새기며.
군산에서는 1992년부터 ‘채금석배 전국중·고교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채금석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다. 국내 축구대회 중 개인의 이름을 따 열리는 대회는 채금석배 대회가 유일하다.
친일을 속죄한 ‘채만식’
![]() |
| ▲ 채만식 선생 |
친일작가로 평가받는다. 친일적 소설과 시를 썼다. 친일 강연도 했다. 친일 행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품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채만식’에게 친일 행위는 멍에로 남아있다. 1950년 6월 40대 중반에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6·25 전쟁이 터지기 전에 사망했다.
친일의 후회였을까. 어쩌면 큰 고통이었을 수도 있다. 해방 후 ‘민족의 죄인’이라는 중편 소설을 발표했다. 자신의 친일 행위를 반성한 작품이다. 자신의 잘못을 처절히 뉘우치고 있다. 친일 행위를 스스로 인정한 최초의 작가다.
이런 반성으로 친일 작가 중에는 그나마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장편소설 탁류(濁流)는 채만식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1930년대 사회상과 하층민의 삶을 묘사했다. 금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타락한 사회를 통속적으로 풀어냈다. 채만식은 탁류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도 던졌다. ‘흐린 물이 지나가면 깨끗한 물이 온다’라는 암시로 희망을주고 있다.
군산시에서는 2003년에 ‘채만식 문학상’을 제정했다. 매년 10월 5일 군산 시민의 날에 시상한다. ‘채만식 문학관’도 운영하고 있다. 채만식의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