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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에서 AI 관련 강연하는 최태원 SK 회장 [연합뉴스] |
SK가 대한민국을 ‘AI 소비국’에서 ‘AI 수출국’으로 바꾸겠다는 중장기 투자 구상을 내놨다. 핵심은 AI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다. SK텔레콤이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맡고,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AI 메모리 공급망을 책임지는 구조다. 총 투자 규모는 2100조원에 달한다.
최태원 SK 회장은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AI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생산기지 등 SK가 만드는 AI 인프라는 다양한 산업까지 함께 성장하는 발판으로 작용해 대한민국의 핵심 성장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어 “이번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이 AI를 소비하는 나라에서 AI를 수출하는 나라로 전환하는 근간이 될 것”이라며 “SK는 AI를 통해 대한민국의 성장에 동참하고, 글로벌 AI 생태계를 주도해 나가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SK의 구상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한 AI 데이터센터 구축이다. 다른 하나는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AI 메모리 생산벨트 확장이다. 데이터센터는 AI를 돌리는 계산 인프라이고, HBM 등 메모리는 AI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SK는 두 축을 동시에 키워 AI 인프라 전체를 수출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SK텔레콤은 총 1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1단계로 전력과 부지를 갖춘 여러 지역에 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먼저 조성한다. 이후 AI 수요와 투자 여건을 보며 2035년까지 추가 10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순차적으로 확대한다.
이 사업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은 약 1000조원이다. 다만 이는 SK텔레콤 단독 현금투자라기보다 전략적 파트너 투자, 고객사 입주 계약,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에 가깝다. AI 데이터센터는 부지, 전력망, 냉각설비, 그래픽처리장치(GPU), 네트워크 장비, 운영 소프트웨어가 함께 들어가는 초대형 인프라 사업이다. 자금 조달 구조와 장기 고객 확보가 사업 속도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SK텔레콤은 이미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울산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엔비디아와 함께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인 ‘AI 팩토리’ 구축 계획도 내놨다. AI 팩토리는 단순 서버 임대 공간이 아니다. GPU, 초고속 네트워크, 전력·냉각 시스템, AI 운영 플랫폼을 묶어 대규모 AI 학습과 추론을 처리하는 산업형 인프라다. SK텔레콤이 통신회사를 넘어 AI 인프라 사업자로 체질을 바꾸려는 이유다.
SK하이닉스는 110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전략을 맡는다. 핵심은 용인, 청주, 서남권을 잇는 AI 메모리 생산벨트다.
우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기 완공을 추진한다. 당초 2045년 완공 예정이던 일정을 12년 앞당겨 2033년까지 네 번째 팹 건설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이후 생산설비와 장비 투자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면 용인 클러스터에는 총 600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청주 생산거점도 고도화한다. SK하이닉스는 청주에 약 100조원을 투자해 낸드 신규 팹 건설과 생산장비 도입을 추진한다. HBM 후공정과 첨단 패키징 역량도 강화한다. AI 반도체 경쟁이 단순 메모리 생산량이 아니라 패키징, 전력 효율, 공급 안정성까지 포함한 종합 경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서남권은 차세대 생산거점으로 제시됐다. SK하이닉스는 대규모 부지 확보가 가능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전력·용수 등 기반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반도체 생산기지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투자가 본격화하면 부지 확보, 팹 건설, 생산설비 도입 등을 포함해 약 400조원이 단계적으로 투입될 수 있다.
이번 투자 구상은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생산지도를 전국으로 넓히겠다는 의미도 갖는다. 울산은 AI 데이터센터, 용인은 메모리 핵심 생산기지, 청주는 낸드와 패키징 거점, 서남권은 차세대 대형 반도체 생산기지로 연결된다. SK가 제시한 2100조원은 단순한 기업 투자 발표를 넘어 지역 산업지도를 다시 짜는 계획에 가깝다.
그러나 실행 변수도 적지 않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반도체 팹은 전력뿐 아니라 용수, 폐수처리, 인허가, 전문인력 확보가 필수다. 서남권 생산거점이 실제 속도를 내려면 부지 선정보다 전력망과 용수망 구축이 먼저 따라와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만으로는 반도체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자금 조달도 관건이다. 2100조원은 장기간에 걸친 총사업 규모다. 시장 수요, 고객사 계약, 파트너 투자, 금융 조달, 이사회 승인에 따라 실제 집행 속도는 달라질 수 있다. AI 메모리 수요가 계속 급증하면 투자는 빨라질 수 있지만, 공급과잉 우려가 커지면 속도 조절도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이번 발표의 의미는 분명하다. AI 경쟁은 이제 모델 개발 경쟁만이 아니다. 전력, 데이터센터, GPU, 메모리, 패키징, 네트워크를 누가 안정적으로 묶어내느냐의 경쟁이다. SK는 이 가운데 통신과 반도체라는 두 축을 동시에 가진 국내 대표 그룹이다. 최 회장이 말한 ‘AI 수출국’ 전환은 AI 서비스를 해외에 파는 차원을 넘어, AI가 돌아가는 기반 자체를 산업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SK의 2100조 구상은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력망이 깔리고, 용수가 확보되고, 고객사가 들어오고, 팹이 실제 가동돼야 비로소 투자는 산업이 된다. 성공한다면 SK는 국내 AI 인프라의 가장 큰 민간 축이 된다. 반대로 실행이 지연되면 2100조원은 선언적 숫자로 남을 수 있다.
이제 관건은 발표가 아니라 속도와 집행이다.
토요경제 / 최은별 기자 ceb@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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