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김경탁 기자] 출산 과정을 도와주는 것과 비슷해서 ‘산파법’으로도 알려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의 핵심은 상대방이 주장하는 개념의 '정의'를 파고들어 끝내 주장하는 이가 자신의 무지함을 스스로 깨닫도록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경구는 델포이신전 내부 기둥에 새겨진 글귀를 소크라테스가 즐겨 인용했던 것인데, 그가 평생 사람들에게 알아야한다고 강조한 각자 자신의 면모는 ‘무지’ 즉 ‘아는 것이 없음’이었다.
그렇게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이었고 실제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 상대방은 당황하게 마련이었고, 개중에는 오히려 소크라테스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당황’은 당연한 반응이지만 ‘분노’는 본인이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런 분노 표출의 생생한 사례를 우리는 지난주 어느 사회 유명인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경기관광공사 사장직 공채에 응모해 최종후보자로 내정됐다가 여러 논란 끝에 자진사퇴한 방송인이자 유튜버이면서 음식전문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페이스북에는 ‘황차클럽(황교익에게 차단당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공개그룹이 있다.
회원 수가 무려 1600명이 넘는 이 클럽은 이름 그대로 황교익 씨의 여러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가 ‘차단’ 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모임이다.
그룹주제 탭으로 들어가면 ※센세의주옥같은명언을되새겨봅시다 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온 게시물이 28개 ※황교익에게차단당하게된사연올려주세요 해시태그 19개, ※악수할자격 16개, ※센세와의추억 11개다. 일부는 중복 게시물이다.
올라와있는 사연들을 읽어보면 게시물은 대부분 2018년 12월부터 2019년 초 사이에 집중적으로 작성됐는데, 황씨와 작성자들 사이에 여러 사연이 벌어졌던 시기는 2014~2015년 혹은 그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감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사연들은 황교익씨가 어떤 주장을 자신 있게 펼칠 때 그 주장에 대해 반론 혹은 의문을 제기했더니 황씨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연을 끊거나(온 오프라인 모두), 보복(포털 사이트에 신고해서 해당 글이 올라온 블로그를 블락시키는 등)을 했다는 이야기들이다.
황씨가 그동안 뱉어온 여러 이상한 말들(어떤 대상이 한국과 일본에 공통적으로 있으면 그 기원은 일본이라는 ‘만물일본유래설’ 등)은 너무 이상하고 웃기기 때문에 웹서핑을 하다 쉽게 그리고 자주 접하게 되고 그중 상당수는 팩트체크로 황씨의 주장이 틀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황씨가 그동안 쏟아내온 말이 많은 만큼 그 말들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도 웹세상에는 너무나 많이 쌓여있다.
국내 최대 위키백과 사이트 나무위키의 황교익 항목에 들어가보면 서브 페이지인 ‘비판과 논란’의 서서브 페이지로 ‘사실관계오류’만 모아놓은 페이지와 ‘일본유래설’만 모아놓은 페이지가 각각 별도로 존재한다.
심지어 그가 한국 식문화를 비판할 때마다 비교대상으로 삼아온 일본 식문화와 관련해서도 사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했던 것들이 다수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특히 불고기가 야키니쿠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양하고 치열한 토론이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황씨 본인은 자신의 확신에 찬 주장이 실제 사실과 다르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일말의 여지도 두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절로 품게 된다. ‘황차클럽’에 올라왔던 여러 증언들을 보면 말이다.
황씨가 음식전문 칼럼니스트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과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자를 악마화하는 태도는 공직을 맡기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황씨 특유의 엉터리 ‘만물일본유래설’과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심성·태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연미복’ 이야기로 시작되는 지난주 페이스북에서 벌어진 난동이다.
“이낙연이 일본통인 줄 알고 있다. 일본 정치인과의 회합에서 일본 정치인의 '제복'인 연미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낙연은 일본 총리에 어울린다”
이 말은 이낙연 캠프 관계자의 “경기 관광공사보다 일본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맞을 분”이라는 라디오 인터뷰 발언에 대한 미러링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황씨 자신이 쏟아냈던 만물일본유래설과 맞물려 네티즌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황씨는 자신의 공사 사장 내정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자 공채 절차의 정당성과 자신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은 일개 시민으로서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면서 정치적 견해차이를 가지고 자신을 공격한다는 취지의 포스팅을 페이스북에 쏟아냈다.
그가 며칠간 쏟아낸 여러 글을 읽으면서 왜 자꾸 논점을 바꾸려는지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황교익씨가 경기관광공사 사장직을 맡는다면 그 책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이전까지 그 자리를 맡았던 관료출신들보다는 혁신적인 행정이 나올 것이라고 봤다.
그가 주장한 ‘정치적 견해 차이’라는 것도 아마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몇가지 품성 관련 논란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밝힌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보은인사논란’이라는 프레임이 일부 언론을 통해 제기되기는 했지만 전체 문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사안이었다.
황씨에 대한 비판자들의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이유는 사실관계마저 무시한 혐한적 세계관과 거기서 발원한 것으로 보이는 친일식민사관 느낌의 ‘만물일본유래설’이었다.
특히 그가 자신에 대한 문제제기를 모두 이낙연 후보의 책임으로 몰아붙이면서 그의 정치생명을 끊어놓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태도가 ‘나를 비판하면 빨갱이’라는 식과 뭐가 다른가.
더욱이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일개 시민’으로 규정하면서 자신이 맡고자했던 경기관광공사 사장이라는 자리가 ‘공직’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경기도의회의 청문회를 거칠 예정이라고 스스로 밝히면서도 왜 인사청문회를 하는지 의식이 없거나 없는 척한 것이다.
이낙연 후보가 “캠프 관계자의 발언이 과했다”며 사과의 뜻을 밝혀도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계속 폭주하던 황씨는 이해찬 전 대표의 위로를 받은 후 갑자기 마음을 가라앉혔고, 이튿날 스스로 내정자 직에서 물러났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독선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공기업 사장직을 맡으면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황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떡볶이 먹방 영상을 촬영한 날이 경기도 이천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 화재 당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2차전이 시작됐다.
이 지사 측의 사실해명문을 읽는데 “현장에 이목을 놓지 않았습니다”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턱 막히고 목이 매어왔다. 소방관이 고립돼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는데도 하하호호 희희낙락 먹방 촬영이 가능했다는 뜻….
비판이 쏟아지자 이 지사는 결국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언론사 기자의 관련 질문에는 “이미 사과했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거부했다.
내정자와 지명자가 똑같은 성정을 가졌구나 싶으면서, 이런게 진정한 코드인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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