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106]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

유상석 / 기사승인 : 2012-10-26 13: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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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병’ 정치인 돼 접경 주민 눈물 닦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중에는 국토방위를 위해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는 군인도 있다.


많은 군인이 ‘내가 직접 나서 내 가족과 겨레를 지킨다’는 사명감과 긍지로 근무에 임하고 있지만, 각종 언론에서 군 관련 좋지 못한 소식이 보도되거나, 과거의 잘못된 정권창출 과정으로 인해 비난을 받을 땐 힘이 빠진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가끔 “잘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욕먹는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한기호 (새누리당ㆍ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 의원은 지난 1975년 소위로 임관한 이래, 40여년 간 군인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그는 “군이든 기업이든 사회단체든, 정치를 통해서 그 조직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중 군만 정치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는 탓에, 안보와 관련한 영역에서 군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못하고, 국민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있다”며 “우리 군이 과거 정권창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 참여’라는 짐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정치인의 길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 “접경지역 없으면 대한민국 없다”
한기호 의원의 고향은 지금은 비무장지대에 속한 철원 김화다. 그는 6ㆍ25 전쟁 당시 철원 김화를 떠나 경남 밀양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 태어났고, 고향이 휴전선과 비무장지대에 가로막히면서 철원 와수리에 정착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상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처지였지만, 누나들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한양공고와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1975년 소위로 임관됐다. 한기호 의원이 항상 “형편이 어렵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하는 이유는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후 40여 년의 군 생활 대부분을 철원과 양구, 고성 등 분단의 현장인 접경지역 최전방에서 복무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접경지역의 현실을 경험하고, 접경지역의 문제점을 고민해 ‘약무접경 무국가(若無接境 無國家ㆍ접경지역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없다)’라는 신조를 갖게 됐다고 한다.


한기호 의원은 철원지역을 관할하는 5군단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접경지역 주민의 영농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민통선 초소 출입절차를 간소화하고 민ㆍ관ㆍ군 지역발전협의회를 통해 주민의 민원 해결에 앞장섰다. 특히 2008년 4월 실향민 120여 명이 비무장지대에 갇힌 고향 땅을 죽기 전에 밟아보고 싶다고 호소하자, 이들에게 방탄복을 입힌 뒤 수색대 엄호 하에 DMZ 고향을 방문하도록 주선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다 육군교육사령관을 마지막으로, 2010년 7월 강원 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군을 떠나 정계에 입문하게 됐다.


◇ 접경지역 주민의 아픔 어루만져
한기호 의원의 지역구는 주민이 13여만 명, 군인이 10여만명 거주하는 곳으로, 주민과 군(軍)은 불가분의 관계다. 육군 3성 장군 출신인 한 의원은 “그간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이름 하에 온갖 규제와 불이익을 감내해 온 접경지 주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전방지역 도로는 대부분 2차선으로, 1개 차선 폭이 3미터에 불과하다. 전차 폭이 3.6미터임을 감안할 때 전차가 다니면 2개 차선을 다 사용해야 해서 주민들의 불편이 크다”고 꾸준히 지적해, 관련법이 입법예고 돼 있다.


◇ “다시 ‘졸병’돼 낮은 자세로 일할 것”
한 의원은 지난 2011년 12월, <여의도 졸병이 된 장군>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책 제목에 하필 ‘졸병’ㆍ‘장군’ 등의 단어가 들어간 데 대해, 주위에서 ‘너무 품위가 없다’, ‘군대 냄새가 지나치게 많이 난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저는 군인 출신 국회의원이고, 책이 출간되던 당시엔 보궐선거에 당선된 초선의원이었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육사에 입학한 1971년 2월 1일부터 전역한 2010년 4월 28일까지 군생활을 40년 가까이나 했으니 군인 냄새가 날 수밖에 없고, 또 군인 출신이라는 그 경력 덕분에 당선됐으니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한 의원은 “그래도 국회에서, 세미나장에서, 지역구를 방문하면서, 나의 미숙함을 스스로 느끼고 있고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졸병’이라고 해도 과히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군에서 시간이 흐르고 능력이 갖춰지면 계급이 진급하듯이 오늘의 졸병 국회의원은 ‘고참’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노력들이 쌓여가면서 보람도 함께 쌓여갈 것이고 국가와 지역을 위해서 일 잘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목표가 달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기호 의원은 “지난 18대에 이어 19대 의원으로 선출해 주신 지역 유권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살기 좋은 접경지역을 만들기 위해 거침없이 달려온 지난 2년을 뒤로하고, 다가올 4년은 더 낮은 자세로 다시 뛰겠다”고 다짐했다.


또 “그러기 위해 거창한 말만 앞세우기보다, 언제나 지역주민 곁에서 봉사하고, 주민의 아픔을 함께하겠다. 더 나아가 지역 주민이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군단장 시절부터 접경지역 주민의 생활 불편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고, 실향민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가 장군 계급장 대신 금배지를 달고 다시 ‘졸병’이 돼,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장군이었던 그의 과거만큼, ‘졸병’의 미래를 높이 평가한 지역 유권자들은 그를 2선 국회의원으로 선택했다.


접경지 주민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군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확실히 전달해, 강한 국군을 만드는 데 앞장설 한기호 의원의 향후 행보는 주목해도 좋을 듯하다.


◇ 한기호 의원은…
6ㆍ25 동란 중이던 1952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 종전 후 고향인 철원에서 와수초등학교ㆍ김화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한양공고ㆍ육사(31기)를 거쳐, 동국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함. 건양대 행정대학원 명예 행정학박사. 1975년 소위 임관 후 △22사단 연대장 △1군사령부 동원처장ㆍ작전처장 △보병 2사단장 △육군교육사령부 교육사령관 등 역임. 지난 2010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후, 현재 2선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 저서로 <오성산 군인>, <여의도 졸병된 장군>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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