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신’ 받들어 정치선진화로…”

유상석 / 기사승인 : 2013-02-07 15: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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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 정의화 새누리당(부산 중ㆍ동) 의원 (119)

▲ “포은 정몽주의 정치관인 단심(丹心)이 내 정치관이기도 하다”고 강조한 정의화(새누리당ㆍ부산 중,동) 의원.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정의화(새누리당ㆍ부산 중,동구) 의원은 의사 출신의 5선 의원이다. 정 의원은 지난 1996년 초 당시 신한국당의 공천에 발탁되고, 15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여의도에 입성해 지금까지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현실정치에 나서게 된 계기, 그의 정치관, 앞으로 나아갈 길 등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정 의원의 조상인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이다. 그는 “제가 영일 정씨 30대 손인데, 11대가 고려 말 충신으로 문하시중까지 지내신 포은 정몽주 선생”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 정치초년병, 포은 정신으로 선거에 임하다
정 의원이 열다섯 살이던 때, 그는 부친을 따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포은 선생 묘를 참배했다. 그는 “살을 에는 한겨울 추위 속에서 포은 할아버지의 영당과 영정, 위패를 참배하면서 어린 저는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왕조가 뒤바뀌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충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포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제 가슴에 깊이 새겨졌고 그때부터 저는 틈틈이 포은 할아버지에 대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습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정의화 의원은 직원 60여명, 80병상에 불과했던 봉생병원을 직원 900명, 800병상의 2개 종합병원으로 키우는 등 CEO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미세 뇌혈관수술의 대가(大家)로 이름을 날렸다.


평소 환자로부터 생긴 이익은 환자와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정 의원은 병원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문화ㆍ복지재단도 설립했다. 또 당시 극도로 악화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영호남민간인협의회를 만드는 등 NGO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만으로는 그의 꿈이자 비전인 ‘건강사회 만들기’를 실현하는데 한계를 느꼈고 마침내 1996년 초 당시 신한국당의 ‘공천혁명’에 발탁돼 15대국회 총선에 나섰다.


“반장 선거도 제대로 한번 치러보지 않았던 정치초년병인 제가 총선을 치르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금권선거가 판을 치던 때라 ‘돈을 주면 사람을 모아주겠다’든가 ‘선거운동을 대신 해 주겠다’는 등의 제안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포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정의화 의원은 당장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쓴 <포은 정몽주>라는 책을 샀다. 선거운동을 마친 자정 무렵 만신창이의 몸으로 귀가하면 서너 시간 쪽잠을 잔 후 다시 집을 나서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시간을 쪼개 책을 읽었다.


“포은 할아버지도 이방원의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더라면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사셨을 겁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정치철학으로는 그런 타협을 받아들일 수 없으셨겠지요. 책을 읽으면서 할아버지의 그런 단심(丹心)을 마음에 새기고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선거에 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막판까지 책을 다 읽지 못해 정의화 의원은 급기야 베개 밑에 책을 넣어 베고 잤다. 그만큼 할아버지의 정신을 깊이 간직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16~7년 전 이야기지만 그때 새긴 할아버지의 단심이 정치인 정의화의 철학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 ‘거물’ 누르고 여의도 입성하다
그런 의지 때문이었을까. 정의화 의원은 당시 5ㆍ6공화국의 실세였던 허삼수 씨 등 거물 정치인들을 누르고 여의도에 입성했고 그 후에도 지역민의 압도적인 지지와 성원 속에 어느덧 5선의 중진으로 자리잡았다.


정의화 의원은 초선 땐 운전기사 없이 자가운전을 고집했고, 의회외교를 위해 해외에 나갈 때마다 남은 여비는 꼭 국회사무처에 반납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정치철학과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면 결코 타협하지 않은 탓에 당내 비주류로 설움을 겪기도 했다. 5선 의원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마다 포은 정신이 바탕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포은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에도 할아버지가 주창한 성리학의 기본 덕목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리학의 기본정신이 인의예지 아닙니까. 오늘날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나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는 인의예지 같은 우리 고유의 정신이 망실되어 빚어진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혼이 증가하고 출산율이 떨어져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나라는 젊은 노동력이 부족한 늙고 병든 나라가 될 것이고 이는 곧 국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인의예지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다시 중심을 잡게 되면 나와 국가, 부모와 자식, 이혼이나 출산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고, 이를 통해 발전적인 미래로 나아갈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의예지 같은 우리 고유의 덕목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화합의 정신으로 대한민국 선진화 이끌 터
정의화 의원은 정치권 입문 이후 지역화합과 남북통일 등에 앞장서며 국민대통합의 정치를 실천해온 대표적인 화합형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4년부터 한나라당 내 ‘지역화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호남창구’ 역할을 해왔고 2009년에는 한나라당 의원 최초로 조선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부산 출신 호남 국회의원’, ‘동서화합의 전도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올곧고 화합하여 살라는 뜻으로 제 이름을 의로울 의(義)와 화목할 화(和)로 지어 주셨습니다. 여야 의원들과 두루 원만하게 지내면서 5선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제 이름자에 담긴 가르침을 늘 잊지 않고 실천하면서 살기위해 노력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포은 할아버지의 충효의 정신과 강직하고 정직하신 아버님의 가르침, 그리고 제 이름자에 담긴 화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19대 국회에서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 정의화 의원은…
1948년 부산 출생. 부산중ㆍ고, 부산의대를 나와 연세의대에서 석사ㆍ인제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경외과 전문의다.


지난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 현재까지 5선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국회부의장ㆍ국회의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


국회의원 외에 △2015 광주U대회 조직위원장 △세계스카우트의원연맹 총재 △동래봉생병원 의료원장 △미국신경외과학회 정회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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