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이 들끓고 있다. 작가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나서다. 세상은 이런 일을 예전에 미처 몰랐다는 듯 새삼 들끓는다. 분노의 도가니다. 쇠붙이를 고열로 달궈 녹이는 도가니 속이 이러할 것이다. 벌써 7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5년 전에 재판이 끝났던 사건이다. 과연 세상은 몰랐을까.
사건은 광주의 청각장애인 교육기관인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상습 폭행과 성적 유린이 핵심이다. 교장부터 교사까지, 말 못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몹쓸 짓을 저질러 문제가 되고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졌지만 5년 전 사법부는 이미 고발당한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게 전말이다.
들끓는 여론에 정신이 들었는지 정치권은 대통령부터 국회까지 일제히 관심을 표명하고 국회는 국정감사에서 관련기관들을 물고 늘어진다. 정치권의 질타를 받은 수사기관들이 특별수사를 시작하고 교육당국도 새삼 재조사에 들어간다. 꼴이야 어떠하든, 이제라도 세상이 관심을 갖고 문제를 바로잡아보려고 하는 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은 뜨겁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닐 성 싶다. 사법부가 이 사건을 재심하여 일반 국민의 사법감정이 만족할 수 있는 처벌을 내려야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겠지만, 그러자면 어느 정도 사법부의 자기부정이 불가피하다. 기존의 재판이 설혹 말도 안 되는 엉터리였다 치더라도 엄연히 규정되어 있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초월한다면 나라의 법치는 그야말로 만심창이가 되고 말 것이다. 이 노릇은 또 어쩌겠다는 말인가.
일각에서는 당장 인화학교 법인 인가를 취소하고 학교를 폐쇄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쾌도난마의 일벌백계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는 모양인데 이도 이성적인 주장만은 아닐 듯하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하나 신설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민심은 ‘도가니’의 내용과 같은 사건에 짐짓 정의로운 분노를 표출하지만, 당장 자기 집 주변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선다 하면 ‘결사반대’ 같은 피켓시위를 불사하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다. '정의로운 분노'와 ‘내 집 주변은 안 된다는 이기심’의 이율배반은 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도시 안에 고아원이나 장애인 편의시설을 하나 새로 세우려 할 때 주민들의 반대시위와 법정소송이 벌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 기존의 학교 하나를 폐쇄한다는 건 그만큼 장애인들의 교육받을 기회를 줄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인화학교 폐쇄를 거론하는 당국의 언급에서도, 재학생들에 대한 대책으로 겨우 일반학교 전학 정도를 떠올리고 있다. 왜 이 학교를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인수하여 쇄신하거나 학교를 새로 세우겠다는 아이디어는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일까.
국민 일반이 뜨겁게 분노할 때, 책임 있는 정치권이나 당국이 할 일은 즉흥적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력으로 그에 맞는 대책을 내놓는 일이다. 덩달아 흥분해가지고는 학교폐쇄 같은 극단적이고 즉흥적인 아이디어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건 무책임해 보인다.
‘분노는 뜨겁게, 해결책은 차갑게’ 이것이 지금 ‘도가니 사건'의 해결에 이상적인 반응일 수 있을 것이다. 기껏 흥분해서 한참을 떠들었지만 그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 보면 달라진 게 하나 없는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는가. 이 사건만 해도 그랬다. 5년전 신문 방송이 얼마나 이 일에 관심을 보였던가. 이제와 돌아보니 그 때 사회적 지탄을 받고 법정까지 끌려갔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돌아와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당시 학교를 감쌌다고 비난받던 교육책임자가 지금은 교과부에 특채되어 일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새삼스럽게 무슨 '도가니法'을 운운하며 민심의 열기에 편승하려는 정치인들 상당수는 그 당시에도 이미 국회의원으로서 재단을 견제하는 새 법 제정에 머리를 싸매고 반대했었다. 피해 학생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며 학교 관계자를 변론하던 변호사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평등한 권리의 보장, 그리고 이를 위한 배려. 이것은 한두 가지 특별 이슈에 대한 시범적 관심이나 이벤트로 그칠 일이 아니다. 법적 제도적 장치로서 이처럼 잔혹한 일이 다시는 벌어질 틈이 없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미국의 퓰리처상에는 언론 보도 분야 뿐 아니라 문학 분야, 픽션(소설)에 대한 시상도 포함되어 있다.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일이 미디어의 본분이라 한다면, 소설과 영화 연극도 훌륭한 미디어 매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픽션을 표방하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는 어쩌면 언론 매체보다 더 깊이 사건의 진상과 진실을 파헤치는 데 유용한 수단일 수도 있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와 영화 도가니가 그 가능성을 훌륭하게 입증하였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