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글로벌 금융사 인수 ‘눈치싸움’

토요경제 / 기사승인 : 2011-10-17 11: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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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외환위기 당시 외국인들이 국내에 와서 잔치를 벌였지만 2008년 금융 위기 때 우리는 기회를 놓쳤다. 우리나라가 지금 상태에서 한 번 더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이번에 오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국내 A 사모펀드 대표)
‘선견지명(先見之明)’일까? ‘시기상조(時機尙早)’일까?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글로벌 증시를 뒤덮은 가운데 국내 금융사들이 유럽에서 투자 기회를 찾고 있어 주목된다. 사모펀드(PEF)업계 역시 유로존 사태 추이를 관찰하면서 유럽의 우량기업 인수·합병(M&A)을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관건은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를 비롯해 유로존 위기의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되고, 얼마나 장기화될 지 여부다. 기회일 수 있지만 ‘바닥’인줄 알고 진출했다가 ‘무릎’일 수 있는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들과 사모펀드업계는 당장 매물을 찾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진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우투, 그리스기업 인수 TF팀 꾸려 ‘해외진출 움직임’


국내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 미국 기업들이 헐값에 나왔지만 적극적으로 M&A에 나서지 못했다. 기업 인수는커녕 국내 기업들마저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서 M&A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다시 글로벌 금융시장을 지배한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 기업들이 헐값에 외국기업에 팔린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기업들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7월 ‘그리스 민영화 작업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실무진들이 지난달 19일부터 4박5일간 유럽을 방문했다. 이들은 유럽에서 여러 기업과 기관을 실사했다.
남동규 우리투자증권 이사는 “그리스의 경기가 불안하다보니 알짜 기업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과거 외환위기 때 우리도 알짜 기업이 외국계에 팔린 경험이 있듯이 어떤 사업 기회들이 있는지 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IB)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투자증권은 유로존 위기를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을 지 타진하고 있다. 선진국 진출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리스크가 작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는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국내 IB 시장 규모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는 만큼 결국 해외 진출을 할 수밖에 없다”며 “유로존 위기와 같은 기회들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고 도약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해외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남유럽 위기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위험이 전개될 지 몰라 투자를 한다기보다는 많은 연습을 하고 있다”며 “유럽 지역에서 가능한 투자(딜)를 검토하고, 기업체나 기관투자자에게 소개할 수 있는 건이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진출…사모펀드 ‘타이밍 눈치’…증권사 ‘아직은 부담’


사모펀드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국내 굴지의 사모펀드 대표는 “유럽 은행들이 어려워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이탈리아 때문에 은행들에 파장이 미치면 기업들이 어려워질 것이 확실히다”며 “금융기관도 그렇지만 기업들도 좋은 투자 기회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더군다나 국내 기업은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럽이 어려워지면 덩달아 국내 상황도 녹록치 않게 된다. 국내 기업들은 ‘위기는 기회’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현금을 쌓아놓아야 할 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지 가늠하기기 쉽지 않는 이야기다.
그는 “지금이 바닥이 아니라 또 다른 바닥이 있을 수 있는 만큼 투자시기를 잘 조정해야 한다”며 “미국은 행정부가 강력히 조정을 할 수 있지만 유럽은 통합의 리더십이 없다. 특히 재정적자는 기업이 어려운 것과 달리 쉽게 개선되지 않고 질질 끌려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재 유럽 상황은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출렁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와 유럽연합(EU)에서 긴급 구제금융을 받아 하루하루 연명하던 그리스도 이제는 디폴트 목전까지 몰렸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디폴트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리스 디폴트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물론 유럽과 미국까지 도미노처럼 흔들릴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다른 증권사들은 여전히 유럽 진출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들이 해외 기업 IB를 할만한 자금이나 펀딩 능력이 안 된다”며 “전략적인 부분으로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유럽 재정위기가 회복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유럽은 투자 범위밖에 있다. 제안이 들어오면 검토는 했지만 유럽까지 사업 범위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직접투자(PI)의 역사는 짧고, 실수도 많았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에 가보지 않은 채 값이 떨어졌다고 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금융시장에 위기가 오면 국내 금융기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광해, ‘글로벌 금융위기, 국내금융사 기회될 것’


한편 최광해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도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기관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협력관은 2008년 리먼사태에 의한 금융위기과 지금의 위기를 각각 ‘심장병’과 ‘관절염’에 비유하면서 “위기의 강도는 2008년보다 약하지만 쓸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은 그때보다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2008년 위기는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발생해 인체로 말하자면 심장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이번 위기는 유럽 중에서도 그리스라는 변방에서 생겨났다. 관절염 수준이다. 물론 관절염도 심해지면 하반신 마비가 되지만, 위기의 강도 측면에서는 2008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차이점을 논했다.
또 KB금융지주 어윤대 회장이 ‘1~2년 내 세계 유수 금융회사를 인수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위기가 지나면 글로벌 은행들이 싼값으로 시중에 매물로 나올 것”이라며 “지금 당장 우리가 가진 근육을 사용하기보다는 어려울 때를 대비해 힘을 길르다 보면 기회는 저절로 찾아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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