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러시아는 최근 총선을 치룬 과정에서 갖가지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정부는 시위자 수백명을 체포했고 1만명 규모의 진압부대를 주요 도시에 배치했다.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통합 러시아당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푸틴 총리는 자신이 재선될 가능성이 높은 내년 3월 대선 이후 개각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SNS등을 중심으로 시위가 장기화·본격화 될 조짐을 보여 러시아에도 과연 봄이 올지 여부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러시아 총선에서 부정 선거 행위가 수없이 많이 저질러져 총선 자체가 사기, 조작 선거라는 주장이 러시아 안팎에서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이를 항의하는 시위도 러시아 대도시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총선에서 푸틴 총리가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은 과반의석을 확보했으나 4년 전에 비해 의석수가 크게 줄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통합러시아당은 하원(국가두마) 총 450석 가운데 77석이 줄어든 238석을 얻는데 그쳤다. 좌파 '공정한 러시아당'은 38석에서 64석, 극우 '자유민주당'은 40석에서 56석으로 늘렸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온갖 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돼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여러도시에서 수천명이 참가한 시위가 전개됐다.
지난 6일에는 수천명 규모의 시위대가 수도 모스크바의 트리움팔라야 광장 인근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푸틴은 사기꾼이고 도둑놈이다”, “푸틴 없는 러시아를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자들은 “이번 총선은 수치스러운 것”, “푸틴 없는 러시아”, “푸틴의 장기집권에 반대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크렘린궁으로 가두행진을 벌였고, 러시아 경찰은 트리움팔라야 광장을 봉쇄하고 시위대와 대치, 이들의 거리 행진을 저지했지만 진압 과정에서 300여명이 체포됐다.
푸틴의 고향인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해 약 200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도 유사한 시위로 25명이 체포됐다.
모스크바 법원은 시위 현장에서 경찰 명령 불복종 혐의로 체포된 러시아의 유명한 인터넷 논객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해서는 15일 구류형을 선고했다.
러시아 내무부는 모스크바를 포함한 러시아 전역의 질서 유지를 위해 1만1천500명 규모의 진압부대를 배치하고 경찰의 경계 태세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군인들을 태운 무장차량들이 도심으로 향하는 모습을 다수의 러시아 블로거들이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 사전에 투표율 조절
실제로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고백도 공개됐다. AP 통신은 지난 6일 모스크바 지역의 한 투표소 선거위원회 위원장의 ‘부정’ 고백을 보도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 참가하는 러시아 주요 4개 정당은 선거 전에 만나 선거구와 투표소에서 각각 얼마 정도의 표를 얻을지를 협상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은 당초 득표율 68% 내지 70%를 원했으나 너무 높다는 것을 인정, 65%로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선거 당일, 투표소 종사자들은 투표함에 사전 기표한 용지를 소리 없이 찔러 넣기를 반복했다. 한번에 50장이나 집어넣기도 했으며, 투표용지가 부스럭거려 혹시 보는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고백은 이어졌다. 그는 “투표소마다 이렇게 종사자가 몰래 찔러 넣을 수 있는 표에는 한계가 있어 지역 선관위는 투표소별 투표용지 수백장을 꺼내 통합러시아당에 기표한 뒤 투표소에 등재되지 않은 가짜 철새 유권자단을 투표소별로 돌려 투표하게 했다”며 “가짜 선거등록인부를 진짜와 바꿔치기 했다”고 설명했다.
◇ 야권 “절반으로 줄어든 득표율, 반드시 문제제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자유주의 성향의 야당 ‘야블로코(사과)당’은 “이번 총선 결과가 조작됐다”며 “총선 취소를 위한 법적 대응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타르타스 통신에 따르면,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야블로코당 당수는 7일(현지시간) “투표 감시원들의 보고를 근거로 판단, 야블로코당의 득표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면서 “변호인에 의뢰해 모든 법원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부 투표소의 개표 결과를 취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사임을 추진하고 “투표용지 도둑과 정당들의 파멸에 눈을 감은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려한다"고 말했다.
야블린스키는 이번 총선에서 의석을 확보한 정당들의 일부조차 투표 부정을 말하고 있다며 총선을 다시 치르기 위해 이들도 의석을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총선 취소를 위해 시민사회의 활동에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80) 전 소련 공산당서기장도 지난 7일 “러시아 총선을 무효화하고 다시 선거를 치러야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인테르팍스 통신에 “갈수록 많은 사람이 선거결과가 공정치 못함을 믿고 있다”며 “국민적 여론을 무시하면 정국 불안정이 초래 된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 당국은 상당한 부정투표가 있었음을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
◇ 국제사회도 비난 잇따라
이번 러시아 부정선거 사태에 국제사회는 우려와 비판을 동시에 보내고 있다. 유럽의회의 예지 부제크 의장은 러시아 총선 과정에서 발생한 사이버 공격, 독립 선거감시기구 골로스에 대한 위협,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위자 구금 등을 강하게 비난했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발레로 외교부 대변인도 “시민들이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러시아 정부의 시위대 진압을 규탄했다.
유럽연합(EU) 캐서린 애슈턴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총선 과정에서의 선거법 위반, 미디의 공정성 결여, 독립 선거감시기구 공격 등은 매우 우려되는 사태”라고 밝혔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역시 이번 러시아 총선이 “집권당에 편향됐고 선거 당국의 독립성이 결여됐으며 대부분의 언론 보도가 편향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도 5일 선거부정이 “매우 염려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역시 “러시아 총선은 조작됐다”고 비난했다. 클린턴 장관은 “미국은 이번 총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의 승리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러시아 외무부는 “미 백악관과 국무부 장관 등의 총선 관련 언급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비우호적인 공격들을 자제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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