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말로만 경제민주화’에 기업 ‘말로만 상생’ 화답
유통망 완비한 신세계, 롯데와 전면적 치킨게임 불가피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대한민국 유통산업의 공룡기업인 신세계가 편의점 사업 진출을 확정짓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달 말 기자 간담회 등을 통해 자신들이 추진하는 새로운 형태의 편의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리고 나설 예정인 신세계 그룹은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통 채널이 등장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편의점 ‘위드미 에프에스’를 인수한 신세계는 본사와 가맹점이 매출액을 나눠 갖는 기존의 계약 방식과는 달리 본사가 가맹점에 물품만 공급하는 형태의 ‘독립형 편의점’으로 테스팅 마켓을 꾸려가고 있다. 가맹점주들은 신세계 편의점의 상호를 사용하지만 수수료는 지불하지 않으며, 편의점의 상징과도 같았던 24시간 운영 역시 가맹점주의 재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신세계의 편의점 사업 진출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가맹점주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특히 계약 만료가 임박한 이들에게는 비상한 관심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우리 사회에 큰 문제로 등장했던 ‘갑의 횡포’와 관련해 편의점 가맹점주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부각된 바 있어 이러한 신세계의 청사진 제시는 새로운 비전이 될 수 있을지 여부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신세계, ‘자 떠나자, 롯데 잡으러!’
신세계는 역성장에 허덕이는 유통시장에서도 꾸준히 매출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편의점 시장에 진출하며 수익성 제고를 도모할 수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SSM(Supaer SuperMarket, 기업형 슈퍼마켓)등이 골목 상권 보호와 동반성장 기조에 묶여 의무 휴일제 등에 제한을 받는 반면 편의점은 여전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수요층을 확보하며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이미 국내 대표적인 유통재벌로 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세계는 편의점 사업 진출로 인해 ‘백화점-면세점-아웃렛-대형마트-인터넷쇼핑몰-편의점’으로 이어지는 더욱 확고한 유통망을 구축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마트에서 인기가 높은 PB제품(Private Brand, 자체기획제품)을 신세계 편의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신세계는 업계 라이벌인 롯데와의 경쟁에서 다소 열세에 있던 유통 채널을 만회하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기반을 마련했다.
신세계는 롯데와 함께 국내 유통산업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고 있지만, 유통망 구성에서는 롯데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파라다이스부산 면세점’을 인수하며 면세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지난 해 ‘위드미 에프에스’를 인수하며 편의점 사업까지 확장해 유통 채널에서도 대등한 조건을 갖추는 외형 다지기에 성공한 모습이다.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향후 10년간 3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공격적인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영세 도매상의 경쟁력은 어디로...
그러나 신세계 그룹의 이러한 행보에 우려 섞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미 유통업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세계 그룹의 편의점 사업 진출 자체만으로도 시장 자체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편의점 사업 진출로 인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재점화 되는 것이다.
신세계는 이러한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새롭게 준비하는 편의점에서는 자사가 공급하는 제품 외에 다른 업체의 제품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신세계가 소유권을 갖고 있는 부지 외에는 직영 점포를 개설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공급’ 역할에 집중하여 영세점주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세계의 대안 마련에도 우려는 여전하다. 유통재벌의 등장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영세 도매상의 문제는 뾰족한 해결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신세계 편의점의 비중이 커지게 되면, 아무리 신세계가 타 업체 제품의 공급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포화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영세 도매상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신세계가 공급 경쟁에서 원가를 낮추는 조치에 나선다면 파급 효과는 영세 도매상은 물론 동네 슈퍼마켓에도 미치게 된다.
신세계의 ‘상생’ … 유지가 관건
신세계가 ‘상생’에 역점을 두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첨예한 경쟁의 시대에 그러한 의지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유통산업 전문 매체 리테일타임즈의 박명섭 대표는 “국가도 상황에 따라 정책을 변경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며, “국가와 달리 경영환경에 따라 유동적인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고, 매출실적 압박 등 무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요인들이 상존하는 ‘기업’이라는 입장을 감안할 때 신세계가 초기의 취지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신세계는 과거, 제빵업계와 관련해서도 골목상권 침해 문제로 공정위의 징계를 받은 바 있으며 유통사업과 관련해서도 이마트 '에브리데이'를 선보인 후 '변종SSM'으로 재래시장과 슈퍼마켓 등에 심대한 충격을 주었다고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항과 관련하여 이명희 회장은 물론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부사장 등 오너 일가가 모두 연루되며,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 부회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두하여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과 상생, 그리고 골목상권 보호에 힘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신세계 그룹은 계열사인 신세계건설 역시 최근의 화두였던 상생 경영에 역행하는 일감 몰아주기의 주범 중 하나로 주목받았고,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자 실적이 급락하고 있다. 이러한 신세계 그룹의 모습은 경영환경이 변할 경우 ‘상생’의 기조 대신 ‘이익’을 따라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할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유통업계 전반의 과당경쟁도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거듭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편의점 시장이지만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는 CU(보광)를 GS25(GS), 세븐일레븐(롯데) 등 대기업들이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신세계는 물론 최근 홈플러스 역시 사업진출을 선언하며 치열한 전투가 예상되고 있다.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보수진영 까지도 ‘경제 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슬그머니 이 단어를 자신의 경제 정책에서 지워버렸고, 오히려 ‘규제철폐’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소상공인 보호를 목적으로 했던 ‘편의점 신규 출점 거리 제한 규제’를 오히려 없앴다.
정부가 선거를 위해 ‘말로만’ 경제 민주화를 외치니 기업들도 ‘말로만’ 상생을 외치며 화답했다는 비난과 함께, 대기업의 경쟁이 집 앞 골목까지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유통 채널을 전방위로 구축한 신세계와 롯데의 전면적인 ‘치킨게임’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롯데는 지난 2012년 신세계백화점이 입주해있는 인천종합터미널 부지를 매입하며 상도덕 논란을 일으켰다. 신세계 역시 이보다 앞선 2009년, 경기도 파주의 프리미엄 아웃렛 부지 확보와 관련하여 롯데가 진행 중이던 협상을 먼저 선점해가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롯데와 신세계가 유통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과잉투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경쟁적인 치킨게임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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