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 전국 지방선거는 이 나라 정치세력 판도의 ‘재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당별 판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당은 예상치 못한 패배에 망연자실했고, 야당은 유권자들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지지에 벅찬 모습이다.
선거 결과를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심판’이라는 말을 썼다. ‘여당의 고전과 야당의 선전’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국민의 심판’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여당에 대한 심판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국민은 과연 무엇을 심판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심판’이란 말은 지방선거 하루 전인 1일, 한나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인 홍준표 의원에게서도 나왔다. 한 라디오방송 인기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홍 의원이 주장한 ‘심판론’의 요지는 이랬다. "야당이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 문제를 선거 이슈로 들고 나왔고, 또 이번에 그것을 심판하자고 들고 나왔으니 (선거 결과는) 이러한 야당 주장에 대한 간접적인 심판이 될 것이다.“ 물론 선거에서 여당이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란 자신감을 전제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무엇인가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성격을 가질 거라고 의미부여를 한 것임은 분명하다.
이제 현실로 들어난 선거 결과를 놓고 그 말의 의미를 받아들이자면, 결과는 홍 의원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심판을 보여주었다. 전통적 한나라의 아성인 TK(대구 경북)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국에서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이 아닌 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나라당의 세종시 철회 계획과 4대강 사업을 심판하자는 야당 주장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야당이 주장한 '한나라당의 세종시 철회 계획과 4대강 사업에 대한 심판'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나라당은 실제로 민심의 소재를 전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거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을 조금이라도 짐작하고 있었다면, 선거 직전 감히 ‘심판’이란 말을 떠올리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온 세상을 다 쥐고 백성의 마음까지도 쥐락펴락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대 여당의 선거 지휘책임자의 현실 파악이 이러했으니 여권 대다수의 현실인식은 어떠했을지 불문가지다.
한나라당은 정말로 민심을 오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개표직후 청와대의 분위기를 보아도 확연하다. 청와대 여당이 밀어붙이는 세종시 수정안이나 4대강 사업을 민심이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대수롭게 느끼고 있었다면 선거에서의 패배 가능성을 조금은 예상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패배를 당할 경우 어떤 말로 민심을 다독일 최소한의 시나리오라도 준비해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하루 종일 이와 관련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신문은 전하고 있다. 아무런 대비도 도상연습도 없었던 것이다. 참담한 패배가 될 줄은 전혀 예상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권력자들이 누대에 앉아서 아래 세상을 만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에 민심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번 선거 결과, 권력 실세들의 행보가 특정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에서 이처럼 뚜렷하게 외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생각이 어쩌다 이렇게 민심의 실체와는 동떨어지게 되었는지를 심각히 반성해봐야 할 때다. 과연 그들에게 '이것이 민심입니다'라고 전한 자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은 어째서 진정한 민심을 전하지 않고 당장 듣기 좋은 감언으로 실권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했을까. 심지어는 냉정하게 여론을 조사 분석하여 전략적인 대비를 도와야 할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들까지도 그동안 현실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전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제 눈치를 채야 한다. 그것이 권력으로 하여금 국민들의 눈에 오만하게만 보이는 행보를 거듭하도록 부추긴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권력의 핵심은 그들 스스로 쓴 소리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아부나 일삼는 사람들을 곁에 중용한 그동안의 자충수에 대해서도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일은 역사적으로 패망한 군주들의 시대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심판의 이면은 용인이며 축복이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잘못을 심판해달라고 기도한 결과, 그 중 한 사람이 심판을 받았다면 그 상대편에 있던 사람은 상대적으로 용인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승리자라면 비록 자기 라이벌이 심판을 받고 반대급부가 내게 돌아왔다 하더라도 그 심판이 다음에는 얼마든지 내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심판'을 경험한 정부 여당이 그 완고한 마음을 열고 저 바닥깊은 저변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대적으로 반대급부의 승리를 얻은 야당 또한 더욱 겸허한 자세로 민심을 듣는데 소홀하지 않도록 초심을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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