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김세헌기자] 여론으로부터 강성으로 오해받는 철도노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난 10여년간 철도 노동자가 파업으로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준 것은 단 19일에 불과하다. 이런 철도노조에서 지난 6월 27일 89.7%라는 찬성률로 파업안이 통과됐다. 바로 수서발 KTX 경쟁 체제 도입을 시작으로 한 정부의 철도 민영화 계획 때문이다. 2011년부터 추진돼 온 수서발 KTX의 민영화안은 노조와 시민 단체의 끈질긴 반대로 무산됐다가 정권이 바뀐 후에도 또다시 ‘경쟁 체제 도입’이란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수서발 KTX 민영화, 문제는?
한국 철도의 비효율이 가중된 이유 중 하나는 수도권 중심의 철도 네트워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KTX 수익의 80퍼센트, 수송량의 70퍼센트가 수도권 이용객이 다. 서울.금천 구간의 고속선과 일반선이 만나는 지점의 선로 포화상태로 제 기능 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병목 구간으로 인해 늘어나는 고속 열차의 승객을 감당할 수 없어 통로마다 입석으로 가득 찬 KTX가 달린다. 일반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도 일반열차의 운행 편수가 대폭 줄어 불만이다. 여기에 수도권으로부터 연결돼야 탑승률이 높아지는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등 비수익 노선도 선로 용량 한계로 열차 편수를 늘릴 수 없고, 이는 열차 이용의 편의성을 떨어뜨려 열차 이용을 외면하게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안이 바로 수서.평택 고속철도 노선을 신설해 체증 구간을 우회함으로써 철도의 선로 용량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었다. 서울 동남부와 수도권 동부 지역의 철도 이용을 확대하고 서울역으로 집중된 승객을 분산하게 되면 한국 철도의 고질적 문제인 열차 좌석 공급 부족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수서.평택 노선으로 선로 용량의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답보 상태에 빠졌던 일반철도 노선의 준고속화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시속 140킬로미터가 최고인 서울.대전 구간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의 일반열차 운행 시간은 1시간 55분 정도 걸리는데, 이를 시속 180~200킬로미터 정도로 올리면 1시간 20분 내외로 운행할 수 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KTX보다는 느리지만 150~200킬로미터 이내의 중.단거리노선은 일반열차를 이용해도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KTX의 좌석 보유율을 높여 쾌적한 장거리 여행을 보장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의 시작은 이 노선이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예측되자 자본이 여기에 눈독을 들이면서 그 세력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민자 사업’이라는 가면 쓴 민영화의 민낯
국토교통부는 현재도 민영화안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재벌에 고속철도 운영권을 넘겨주는 수서발 KTX 민간 경쟁 체제 도입이 추진됐다. 그러나 특혜 시비와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경쟁 도입’이라는 기본 골격은 그대로 하고 무늬만 바뀐 격이다.
우선 한국철도공사 체제를 넘기 위해 민간 경쟁 체제에서 ‘민간’이라는 말만 빼고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경쟁체제가 도입된 후 국토부의 의지가 반영되면 본격적으로 민영화안이 추진될 것이라는 게 철도노조 측의 설명이다. 특히 수서발 KTX에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 이후 다른 노선들의 민영화가 속속 진행될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자 사업’이란 이름으로 사회기반시설에 민간이 다양하게 진출해 있는데, 민자 사업은 민영화의 ‘위장 잠입’ 형태다. 대한항공이나 포항제철과 같이 완결적 구조의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전통적인 민영화 방식이 아니라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운영권만 확보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진행됐다.
이런 이유로 민자 사업은 민간 기업의 이윤 창출 도구로 기능하지만, 외관상 국가가 관리하고 민간 기업의 효율성을 도입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사회기반시설 전반에 걸쳐 사회적 자산이 사적 수익 창출의 도구로 변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정부가 촉진하고 법이 보장하면서 당연하고 자연스런 현상이 돼버렸다.
철도 민영화와 구조 개편 방안을 제출했던 세계은행은 민간 참여 방법으로 아홉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바로 ‘국가 소유 기업에서 운영 분야의 개방, 사업권 분할, 서비스 공급 계약, 경영 위탁 계약, 사업권 승인’ 등이 그것인데, 국토부가 추진 중인 내용을 보면 세계은행이 말하는 민영화의 핵심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철도적자가 경제를 말아먹는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철도적자가 나라경제를 다 말아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무리는 아니다. 철도 적자 문제만을 놓고 따지고 들 경우, 국토부가 옳으냐 철도노조나 시민단체의 주장이 옳으냐의 문제로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구도 자체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부터 그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에 대해 여러 이해 당사자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철도 적자의 원인이 철도공사의 비효율과 독점 체제에 있다고 해버리기 때문에 민영화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식이다.
용인경전철의 경우 대표적인 민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공항고속도로나 철도공사가 인수한 인천공항철도도 그 폐해가 만만치 않다. 문제는허위 수요예측, 발주처와 사업자 간 결탁, 친인척을 내세운 공사 입찰비리, 시의회와 공무원, 언론에 대한 업체의 부당한 편의 제공, 공사중단 및 개통 연기, 국제 소송에 따른 배상금 지불, 관계자 줄소송, 시재정 압박에 따른 교육·복지 등 다른 분야 예산 삭감 등 사업자의 이익 외에 시민들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 일각에서는 관료와 기업, 금융 세력과 토건 세력이 결탁돼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정부 관료들은 정책 결정과 집행,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수많은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는 이들이 퇴직 후에도 민간 기업의 사외이사 등으로 가면서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상당수 고위직 공무원들이 퇴임 후 민간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들도 정부의 정책 결정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이용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와 토건 자본은 사업 타당성을 확보하고 향후 운영 수입을 안정적으로 챙기기 위해 수요예측을 부풀린다. 이런 수요예측 부풀리기는 기업의 입맛에 맞게 용역 보고서를 작성해 주는 한국교통연구원과 같은 전문 용역 기관의 몫이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방식은 업체의 투자수익률을 산정해 놓고 교통 수요예측을 역산하는 것인데, 이로 인한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된다. 여기에 금융-토건 세력들이 깊은 연결고리를 걸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철도 산업발전 방안은 4대강 사업과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4대강 사업의 경우 대운하가 아니라며 국민을 속였듯이, 철도 역시 표면상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요금인상·안전사고 등 민영화 폐혜 가능성 커
민영화가 현실화될 경우 일반 시민들이 체감하는 부분은 요금 인상이나 구조 조정에 따른 인력 감축, 그에 따른 안전사고, 지방 적자선 폐지로 인한 지방의 몰락 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철도 민영화가 공공성을 띈 철도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수익성이나 효율성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게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철도 회사 사장이나 경영진이 시설 보수비용과 사고보상비용을 저울질하다가 차라리 보상비가 싸다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 그리고 이런 결정이 합리적인 것으로 용인되고 주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수백억이 드는 안전비용보다 사망보험금이 싸다는 로펌의 건의를 받게 된 철도 경영진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상업적 고려만 작동하는 시스템에서는 우리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때문이라는 한 철도노조 관계자의설명이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도 철도 민영화 논란을 필두로 민자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야 의원들은 정부가 객관적인 검증 없이 SOC 민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점검을 촉구했다. 수서발 KTX 등 꺼지지 않는 코레일 민영화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먼저 도출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민병호 의원은 “SOC 민자 사업 추진해서 국가 예산만 낭비하고 사용료만 높였다는 평가가 많다”며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없이 민자유치를 추진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민영화 논란에 휩싸인 코레일에 대한 우려가 크게 쏟아졌다.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은 “철도 민영화는 충분한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 박수현 의원도 “국토부의 ‘철도 운임 산정기준 개정 연구용역’을 보면 민간사업자를 위해 철도운임 상한제를 폐지, KTX 운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며 “국토부가 수서발 KTX 출자회사 설립 등 철도 민영화 추진을 위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이미경 의원은 “(민영화를) 밀어 붙이다 보면 또다시 걸림돌에 부딪칠 것”이라며 “국회 특위를 만들어 대타협을 위한 합의를 끌어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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