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불통과 독선...국민 심판에 ‘동참’

심 원내대표가 경기도지사에 출마할 경우 의원직을 내놓아 돼 당의 국회의석이 줄어드는 현실적인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 원내대표는 "정치는 현실의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저같이 소수 정당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많은 현실적 비약을 맡게 된다"며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최선이지만 때에 따라서 차선, 차기 선택을 해야 되는 게 정치"라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이번 경기도지사 출마 문제는 제 개인적 차원의 고민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정의당의 선거전략 차원에서 검토돼 왔다"며 "이번 결정은 저의 판단이기도 하고 당의 결단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의당 의석은 5석이다. 저의 출마는 의석 한 석이 줄더라도 목표 달성이 가능해야 그 의미가 있는데 지금은 선거 상황이 제가 현실적으로 출마를 해서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도가 됐다"고 말했다.
통합신당 출범 … 강력한 양당 경쟁 구조
심 원내대표는 최근의 정치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치는 현실의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저같이 소수 정당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많은 현실적 제약을 받게 되지 않느냐. 나의 의지가 가르키는 길을 가는 것도 최선이지만 또 때에 따라서 차선, 차기 선택을 해야 되는 게 정치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밝혔다.
또한 심 원내대표는 "경기도 차원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새정치연합과 제가 경쟁하는 그런 구도가 된다면 의미 있는 경쟁도 가능하겠다 이런 판단이었지만 지금은 통합신당이 출범하면서 오히려 더욱더 강력한 양당 경쟁 구조가 돼버렸다"면서 "새정치를 위해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경쟁하겠다던 당이 예고도 없이 개혁대상으로 지목했던 정당과 합당을 하게 되는 상황이 참 당혹스럽고 또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 역시 현실로 받아들여야 될 것 같고, 이번 선거에서 통합신당이 긍정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보정치의 여전사...‘노동계의 전설’
심 원내대표는 이어 "워낙에 작년 1년 동안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독선의 정치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민생정치를 위해서도 야권이 좀 더 힘을 가져야 된다는 그런 국민들의 요구는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또 저희 정의당도 새로운 전망을 열어나가는 과제와 더불어서 야권 전체의 승리에 복무해야 할 책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서울, 경기에 후보를 내지 않는 것으로 당이 결단을 했다"면서 "아마 그 문제에 대해서는 또 저희 천호선 대표가 저희 달라진 상황에 따른 저희 선거전략 변화에 대해서 국민들게 말씀을 꼭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진보정치의 여전사이자 1980년대 구로동맹 파업을 이끈 노동계의 전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원내 진입.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어젠다를 정치권에 공론화시킨 재벌 저격수이다.
한국 정치의 아웃사이더다. 해방 이후 고착된 거대 보수양당 체제 속에서도 줄곧 진보의 길을 걸었다. 심원내대표가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 그의 친정 어머니는 “이제 그만큼 고생했으면 되지 않았느냐. 출마를 하려면 이제 큰데 가서 하라”며 펑펑 울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비주류라 부른다.
심 원내대표는 ‘저평가 우량주’로 이번 지방선거의 블루칩이다.
그러면서 거대 양당을 겨냥, “요즘 경제민주화니 복지니 재벌개혁이니 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구호가 시대정신이 되도록 만든 ‘나쁜 정치’의 당사자들이 국민의 요구에 떠밀려 지금 그런 정책을 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변화가 있겠나. 정말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분들을 조직화하는 임무가 진보정당이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공학적 계산만으로의 출마는 ‘곤란’
“‘독자성과 대중성’의 조화는 “진보정당의 숙명과는 같은 어려움”이라며 “당면한 국민 요구에 비중을 두다 보면 진보정당의 독자적 발전, 전망 등이 불투명해지는 측면이 있고, 거꾸로 독자성만 강조하면 소수정당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 이를 진보정당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태도”라고 말했다.
최근 국민들에게 불신을 사고 있는 진보정당에 대해서 일침을 가했다.
“국민께도 크게 실망을 드렸다. 평생을 진보운동, 진보정치에 몸담았던 저로서도 너무나 뼈아픈 일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대안으로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었을 텐데…. 상당히 뼈아픈 일이다. 국민들께서 진보정치에 220만 표나 줬는데, 내부에서 발목이 잡혀서 민생(정치)을 거의 못했고 갈라졌다.”고 밝혔다.
진보정당의 여러 가지 몸부림을 진보정당 내부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정당치 않다고 지적 했다.
“그야말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특권층에 맞서 싸워온 당사자들이 진보정당이다. 또 정치개혁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가장 분명히 알고 있는 세력이 진보정당이다. 제가 이번에 출마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성정당, 기성정치인의 정치공학적 계산만으로는 이런 출마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개인의 정치적 진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진보정당이 진보정치를 살리고 그래도 번듯한 진보정당을 만들려는 노력을 앞세우고 거기에 합류하는 것, 그것이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서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하는 내면의 갈등을 이번 불풀마 결정과정에서 수도 없이 하게 됐다”

국내 최초 진보정치 양성기관 신설
1959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1978년 교육자의 꿈을 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독서와 여행, 그리고 연애를 마음껏 하겠다는 소망을 품었던 그는 마음에 둔 남학생마다 학생운동에 열성적인 이들인 바람에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학생운동의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서울대 최초의 총여학생회를 만들었다.
1980년 구로공단에서 공장노동자의 생활을 체험하게 된 그는 노동현장의 참담한 실상을 목도했다. 어린 여공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하다가 끔찍한 산재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하는 현실을 경험하고는 그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명일동 직업훈련소에서 미싱사 자격증을 획득한 그는 구로 공단의 공장에 취업해 ‘어용노조’에 맞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민주노조운동’에 뛰어들었다. 세 차례 취업했다가 해고된 그는 ‘민주노조’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 노조들의 연대 활동을 펼치던 중, 1985년 6월 독재정권의 노조 탄압에 맞선 구로 지역 민주노조들의 동맹파업인 이른바 ‘구로동맹파업’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전국적인 지명수배자가 된다. 구로동맹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벌어진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이었다.
이후 10년간의 수배 생활 중에도 그는 한국현대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일에 앞장섰다. 한국 전쟁 이후 최초의 민주노조 결집체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서는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역임했고, 여러 업종과 부문의 민주노조를 아우르는 민주노총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최초의 산업별 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사무처장을 맡아 리더십과 합리성을 겸비한 ‘철의 여인’으로 단련되었다.
25년간 노동운동의 외길을 걸어온 심상정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17대 국회에 입성하여 맹활약을 펼쳤다.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추궁하여 1조 8천억의 국고 손실을 밝혀내고, 초일류 기업 삼성의 편법·탈법·불법 행위를 들추어냈으며, 정부와 국회가 덮어두려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가 실은 정부 주도의 조직적 공모임을 밝혀냈다. 또한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동맹군이 되어 졸속으로 추진하던 한․미 FTA의 실체와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내어 국민들의 의혹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2007년 심상정은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후발주자로 출사표를 던졌는데, 권영길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당이 대선 참패로 위기를 맞았을 때는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당 혁신안’을 마련했지만 끝내 부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7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단연 최우수의원으로 꼽혔지만, 2008년 총선에서는 고양시 덕양구에 출마했다가 근소한 차이로 낙선, 전국적인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낙선 뒤에 고양시에 혁신교육기관인 ‘마을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정규학교와 교과서가 제공하지 않는 새로운 교육 기회를 제공해왔고, 2009년 12월에는 한국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정책연구와 정치교육, 정치실천을 통합하는 모색으로 사단법인 ‘정치바로’를 출범시켰다.
이 연구소가 올해 초부터 개설한 '정치바로아카데미'는 국내 최초의 정치인양성기관으로서 현재까지 100명이 넘는 진보정치 지망생들을 배출해왔다.
2010년 경기도 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심상정은 수구보수파에 맞선 야권 단일화를 위해 후보 사퇴의 용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그는 진보진영이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의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하며 진보통합운동에 헌신해왔다. 하지만 진보정치세력의 통합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게 되자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연대(진보신당의 통합지지세력) 등 3자간의 통합을 과감히 수용하여 꺼져가던 진보통합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 기여했다. 그 결과 2011년 12월 초에 마침내 통합진보당이 출범하게 되었고, 그는 공동대표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4월 11일에 실시되는 국회의원선거에서 고양시 덕양구 갑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고양시 덕양구에 거주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대한민국 국정에 가감없이 반영하는 정치, 낙후한 덕양을 대한민국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모델하우스로 개조하기 위한 비전을 가지고 승리했다.
총선 이후에는 비례대표 선거를 둘러싼 부정·부실사태로 인해 당내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좌절을 겪었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부동의 정치로 진보정치의 혁신에 앞장 섰다. 10월 21인에는 통합진보당 내 혁신파 당원들과 함게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진보적 정권교체를 주장하며 "진보정의당"을 창당했고, 같은 자리에서 진보정의당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약력
● 경기 파주 광탄 출생
● 대조초등학교 졸업
● 충암중학교 졸업
● 명지여자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역사전공) 졸업
● 구로공단 미싱사로 시작해 25년간 노동운동
● 17대 국회의원(재정경제위, 예산결산위, 한미FTA특위)
●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2008~09)
● 진보신당 경기도지사후보(2010)
● 박원순 서울시장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2011)
● (사) 덕양 마을학교 이사장(현)
● (사) 정치바로 아카데미 원장(현)
● 고양시 덕양 갑 국회의원 (현)
● 국회 복지노동포럼 공동대표
● 쌍용자동차 문제해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공동대표
● KTX 민영화 저지 범국민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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