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기업 노조, 이제 변할까...코로나 사태가 주는 교훈

최봉석 / 기사승인 : 2020-02-24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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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최봉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사내에서 1명이라도 나오면 전 공장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부터 비상체제에 들어갑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24일 지부장 이름으로 발표한 담화문의 골자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코로나 19 사태로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긴 터널'에 진입하며, 일각의 우려대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올해 임금 교섭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우려가 되는 대목은 중국에 이어 국내 자동차부품업체들이 밀집한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산업계에선 사업장을 일시 폐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며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는 '31번 확진자'의 아들은 조사 결과 현대자동차 협력사 직원으로 드러났다. 비록 음성으로 밝혀졌지만 현대차는 부랴부랴 해당 협력사와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대구·경북은 국내 자동차 부품 생산의 핵심 거점이다. 부품사의 20%가 이 지역에 몰려 있다. 특히 경산, 영천, 경주에서 부품을 주로 생산하는데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 생산 벨트로 평가받을 정도다. 연간 매출만 20조원에 달하고, 근무자는 5만명이 넘는다.


지역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부품 업체'가 미치는 경제적 파괴력이 엄청난데, 이 지역의 생산력을 대체할 만한 다른 지역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로 수익성 악화가 가장 우려되지만, 노동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죽음의' 공포감은 더 우려되는 대목이다. 경북 경주 신종 코로나 사망자(41)가 숨지기 전날까지 야근했던 회사인 경주 서진산업이 울산 현대 자동차의 1차 협력사로 알려지면서 이 지역 노동자들이 정상적으로 출근을 해도 되는지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이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현장 조합원을 위한 예방 보급품을 점검하고 통근버스, 출퇴근 조합원에 대한 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확진자가 발생한 영천, 경주지역에 부품업체가 산개해 있어 이 지역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모빌리티 산업'으로 진화를 꿈꾸고 있던 자동차 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있다. 자동차 뿐 아니라 중국에서 부품을 수급하는 주요 제조업의 생산 감소와 수출 감소가 우려되고 있는데, 스마트폰과 함께 대표적 제조산업인 자동차의 글로벌 생산량은 역성장할 위기다.


이처럼 코로나 19가 확산되고 노동자들의 감염이 현실화 되면서 국내 제조업 기반 시설에 비상이 걸린 작금의 시기에는 더 이상 재벌의 '자금력'과 '기술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


결국 노조 관계자의 표현대로 돈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으로, 기계를 돌리는 것보다 코로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지혜를 사측과 손을 잡으며 치밀하게 모으는 게 필수다. 총선을 앞두고 사측을 압박하는 정치적 행위도, 또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 국면 속에서 파업 카드를 꺼내들 시기도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각종 정치 집회 등 행사를 취소한다고 24일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여전히 다시금 거리로 나설 수 있는 '소극적' 제스쳐 수준이다.


이번 기회에 국내 대기업 노조는 과거의 구시대적 투쟁 방식을 버리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큰 그림' 그리기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자동차를 더 빨리 만들고, 스마트폰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적 진보'의 주역이라는 단순한 그림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장 가동이 멈춰 폐허 수준으로 지역 경제가 크게 요동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적극적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국내 제조업은 1차적으로 원자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출구 없는' 위기를 겪었고, 이제는 코로나 19가 2차적으로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키워드'로 등극하면서 의도하지 않게 경쟁력이 실종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를 뒤흔드는 '벼랑 끝' 위기 상황을 목도하면서 재벌은 나쁘고 비겁하다는 공식 속에서 '강경 투쟁'으로 일관했던 노동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확진자가 1명이라도 나오면 전 공장을 세워야 한다는 외침은 허투루 나온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위기의 상황을 맞아 공장을 안전하게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노사가 손을 잡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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