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미국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공> |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은 새로운 형태의 '세계대전'이다.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중국 견제에 올인한듯하다. 군사력, 경제력 등에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데 이어 첨단기술 분야에서 마저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 눈엣가시다.
트럼프정부 당시 자국의 민간기업과 중국 최대의 IT기기 및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자칭타칭 'G2'로 불리우며 미국과 어깨를 견줄만큼 성장한 라이벌 중국에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옥죄기 위한 온갖 전략전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IRA(Inflation Reduction Act, 인플레이션감축법)과 CSA((hip and Science Act, 반도체지원법)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한 기술패권 경쟁을 상징하는 1차 조치에 불과하다. 표면적으로는 기후변화 대응 등 국제 이슈와 자국산업 보호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두 법의 지향하는 공통의 목적은 중국견제다. 미국의 집요한 견제와 규제에 중국은 아직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순순히 앉아서 당할 중국이 절대 아니다.
첨단기술의 패권을 사수하기 위한 미국의 칼끝이 중국을 명확히 겨냥한만큼 중국 역시 호시탐탐 반격의 카드를 준비할 게 자명하다. 두 나라의 기술패권 전쟁이 다양한 분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G2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 그리고 미국을 넘어야 비로소 세계를 제패한다는 중국. 두 강대국의 자존심을 건 기술패권 싸움은 둘 중 하나가 백기를 들어야만 끝날 승부다. 예상보다 아주 오랜 기간 전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두 강대국간 사이에 끼어있는 대한민국이다. 경제 의존도가 가장 큰 두 나라의 패권다툼에 최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견제용으로 내세운 IRA와 CSA가 국내 첨단산업에 미치는 파장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로 인해 K자동차의 간판 현대차그룹은 미국공장이 없는 탓에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 전기차 시장 2위까지 상승한 현대차와 기아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CSA이다. IRA는 현지 공장을 리모델링해 미국에서 직접 전기차를 만들면 해결될 일이지만, CSA는 상항이 다르다. 지난 21일 발표된 CSA의 가드레일 규정을 보면 삼성, SK 등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독소조항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K반도체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국에 반도체 설비 증설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미국은 약 50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미끼로 자국내 반도체 설비투자를 하는 기업에 보조금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설비 확충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보조금지원은 일견 구미를 당길만한 일이지만, 대신에 중국을 포기해야하는 난감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중국은 K반도체의 매우 중요한 생산기지이자, 최대 수요국이다. 결코 중국을 포기하거나 등한히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삼성 시안 공장은 전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16%를 커버한다. SK 우시 공장은 전 세계 D램 생산량의 12%를 차지한다. K반도체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자하는 비중은 40%를 웃돌 정도로 절대적이다. 홍콩까지 포함하면 60%를 넘는다.
미국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 반도체 공장 신설을 추진 중인 삼성과 SK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CSA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향후 텍사스에 2천억달러의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가능성을 내비친 삼성은 당혹스런 입장이다. 이와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글로벌 반도체업체들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미국 내 사업을 확장할 지, 아니면 중국 내 사업 역량을 계속 확대해 나갈 지 매우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보도했다.
WSJ이 지적한 반도체업체는 다름아닌 삼성, SK, TSMC 등이다. 이미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여러곳 가동 중이고, 지속적으로 설비증설과 교체를 추진해야할 삼성과 SK로서는 CSA보조금은 향후 투자 결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미국의 보조금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의 반발을 고려, 보조금을 포기하면 가격경쟁력에서 손해일 쁀만 아니라 최대 경쟁업체인 마이크론에게 맹추격의 기회를 제공할까 우려된다. 미국정부의 눈밖에 날 수도 있다.
미국이냐, 아니면 중국이냐. 선택의 갈림길에선 삼성과 SK는 아직 입장정리를 못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을 택하기 어려운 CSA딜레마에 빠져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두 회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정부와 긴밀히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결국 슬기롭게 난관을 극복하는 길은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통해 CSA규정을 완화 내지는 수정하는 방법 뿐인데, 결코 쉽지않은 일이다.
그러나 반도체는 국가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할 핵심 국가기간산업이다. 그런만큼 힘들더라도 업계, 정부, 정치권이 모두 힘을 합쳐 미국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된다.
토요경제 / 이중배 기자 diale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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