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재개봉·애니·공연실황까지 편성 가능성
와이드 개봉 보완하며 문화 콘텐츠 저변 확대

CJ CGV(대표 정종민)가 대형 흥행작 중심의 극장 운영에서 벗어나 지역별 ‘작은 수요’를 찾는 기발한 실험에 들어갔다. 재개봉작과 독립·예술영화, 애니메이션, 공연실황처럼 전국 일괄 편성이 어려운 콘텐츠의 실제 관객을 먼저 확인하는 방식이다. 대작 중심의 와이드 개봉을 보완하면서 극장이 품을 수 있는 문화 콘텐츠의 범위를 넓힐 가능성이 주목된다.
16일 토요경제가 CGV의 주문형 상영 프로그램 ‘COD-7(CGV ON DEMAND)’ 첫 운영 결과를 분석한 결과 같은 작품에서도 극장별 예매 수요가 뚜렷하게 갈렸다.
COD-7은 매달 7개 후보작을 관객 투표에 부친 뒤 1위 작품의 예매를 열고 극장별 목표 인원이 모이면 상영하는 방식이다. 첫 작품으로 ‘햄넷’이 선정됐다.
용산아이파크몰은 목표 100명에 144명, 영등포타임스퀘어는 36명에 78명이 예매했다. 왕십리·인천·오리·광주상무·대구·서면도 목표치를 넘겼다. 반면 대전은 목표 19명에 11명, 울산삼산은 31명에 20명에 그쳤다.
같은 작품과 가격, 시간에도 지역별 수요가 달랐다. COD-7의 핵심은 이 차이를 데이터로 확인하는 데 있다.
기존 멀티플렉스는 예상 흥행력을 토대로 작품과 스크린을 먼저 배정한다. 전국적인 수요가 큰 작품은 많은 회차를 확보하지만 특정 지역이나 팬층에서만 수요가 있는 콘텐츠는 스크린을 얻기 어렵다.
온디맨드는 순서를 바꾼다. 관객이 있는 곳을 먼저 찾고 스크린을 붙인다.
이 방식이 와이드 개봉 논란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형 작품에 스크린이 집중되는 기존 구조에서 작은 콘텐츠가 관객을 만날 별도의 통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재개봉작이나 독립·예술영화의 전국 수요는 크지 않더라도 특정 지역에서는 상영이 가능한 규모의 관객이 모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아이돌 공연실황처럼 팬층이 뚜렷한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CGV는 이미 이런 방향으로 스크린 용도를 넓히고 있다. 9월에도 재개봉 영화와 애니메이션, 아이유·린킨파크 공연실황, LCK 생중계 등을 편성했다. COD-7은 이런 콘텐츠를 어느 지역과 극장에 배치할지를 판단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투표와 실제 예매를 분리한 구조가 중요하다. ‘보고 싶다’는 관심과 실제 돈을 내는 수요는 다르다. 작품별 투표율과 예매 전환율, 지역별 목표 달성률이 쌓이면 어떤 콘텐츠가 어디에서 팔리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대형 상업영화보다 독립·예술영화와 팬덤 콘텐츠에서 활용 가능성이 큰 이유다.
해외에서 시작한 비슷한 모델이 있다. 미국 Tugg는 원하는 영화와 극장에 일정 규모의 예약이 모이면 상영하는 방식으로 독립영화와 과거 작품을 지역 관객과 연결했다. Gathr의 ‘Theatrical on Demand’도 일정 수준의 티켓 예약액이 확보돼야 상영을 확정한다.
CGV는 자체 극장망과 회원·예매 시스템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이 다르다. 이번 실험은 반복할수록 작품별 관심과 실제 결제, 지역별 반응을 내부 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다.
다만 이를 비용 절감 모델로 볼 수는 없다. 상영하지 않아도 임차료와 감가상각비, 시설 유지비 등 극장의 고정비는 발생한다. 빈 회차를 다른 콘텐츠로 채우지 못하면 스크린이 놀게 되는 것도 같다.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 기존 방식이라면 편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던 콘텐츠에서 실제 시장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사업에서 아직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CGV에도 의미가 있다. 올해 2분기 국내 매출은 166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7% 늘었지만 영업손실 62억원을 기록했다. 관객 회복만 기다리기보다 이미 보유한 스크린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든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COD-7은 아직 첫 실험이다. 한 작품과 제한된 극장만으로 사업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독립·예술영화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더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극장의 경쟁력이 대작 한 편을 얼마나 많이 거느냐에서 여러 지역에 흩어진 작은 취향을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내느냐로 넓어질 수 있다.
CGV가 온디맨드에서 찾는 것은 빈 좌석이 아니다. 대작 사이에 숨어 있던 작은 문화시장을 찾는 다는 점에서 극장산업의 작은 혁명에 가깝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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