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
동국사(東國寺)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다. 군산에는 7개의 일본 사찰이 있었다. 지금은 ‘동국사’만 남아있다. 일제 수탈의 현장이다. 일제는 악랄하게 수탈을 했다. 기름진 쌀을 빼앗아 갔다. 풍성한 물고기를 착취했다. 일제가 필요한 물건은 모조리 쓸어갔다.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시켰다. 신사참배(神社參拜)도 강요했다. 마지막 뺏고 싶은 것이 있었다. 우리의 정신을 뺏으려 했다. 혼을 말살하려 했다. 쉽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저항이 심했다. 그들은 방법을 찾았다. 종교를 통한 침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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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사 대웅전 <사진=김병윤 대기자> |
동국사는 일제가 시도한 식민사관(植民史觀)의 유물이다. 종교를 통해 식민사관을 심으려했다. 일본 ‘조동종(曹洞宗·불교 선종의 한파)’이 세웠다. 1909년 조동종 승려들이 군산에 ‘금강선사’라는 포교소를 세웠다. 일본 승려 ‘우치다’가 주도했다. 1913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조선총독부의 인정을 받아 ‘금강사’라 불렀다. 군산 거주 일본인의 기도장소였다. 한국인 부녀자도 다녔다. 특히 기생이 많이 찾았다. 동국사는 여성이 좋아하는 ‘관음사상(觀音思想)’으로 번성했다. 관음사상은 한국의 민속신앙인 삼신할머니와 비슷하다. 자손을 잘 낳고 번성하게 해달라는 기도처였다.
‘관음사상(觀音思想)’은 평민을 대상으로 한 가르침이다. 현재의 삶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면 끝내 극락왕생한다는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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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왕의 내선일체 문귀가 적혀있는 범종 <사진=김병윤 대기자> |
사찰에는 일제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다. 절 마당에 범종이 있다. 조그마한 범종이다. 무심코 스쳐 가면 안 된다. 단순한 종이 아니다. 일본 천황을 칭송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 내용이 섬뜩하다. “황(皇)의 은덕이 영원히 미치게 하니 국가의 이익과 백성의 복이 일본이나 조선이나 굳건히 될 것이다.” 느낌이 어떠한가. 소름이 돋는다. 일제의 집요한 내선일체(內鮮一體)정책을 알 수 있다. 묻고 싶다. 어느 누가 범종에 적힌 내용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범종은 잘 보존해야 한다. 역사적 증거로 남겨야 한다. 후손에게 일제의 야욕을 일깨워 줄 중요한 자료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아픔의 역사를 잊지 마라. 언젠가 또 경술국치(國權被奪)의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동국사는 1970년에 이르러 현재의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당시 주지였던 남곡(南谷) 스님이 지었다. ‘해동(海東) 대한민국의 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경내에는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조각물이 있다. 참사문비(懺謝文碑)와 소녀상이다. 참사문비는 1992년 조동종 종단에서 보내왔다. 일제의 만행에 사죄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동국사 참사문비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단체가 사죄의 글을 보냈다. 의미가 크다. 일본 정치인들이 보러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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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사 소녀상 <사진=김병윤 대기자> |
소녀상은 2015년에 세워졌다. 민간인의 성금으로 건립했다. 일본 스님도 힘을 보탰다. 일본 운상사 주지 ‘이치노헤’ 스님이 제막식에 참석했다. 성금 1000만 원을 기탁했다. 일본 내 양심 있는 사람들이 모은 성금이었다. 이 소녀상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동상 제작 후 세울 장소가 없었다. 근대역사박물관, 조선은행 뒤, 구 경찰서 자리, 바닷가 등 여러 장소가 물망에 올랐다. 당시 시에서 난색을 보였다. 관에서 부지를 선정하는 데 부담을 느낀 듯하다.
이런 소식에 전(前) 주지인 종걸(宗杰)스님이 발 벗고 나섰다. 동국사에 세우라고. 그분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겠노라고. 방황하던 소녀상은 그렇게 동국사에 자리 잡았다. 인생은 새옹지마라 하지 않는가. 소녀상도 그렇다. 기도도량 동국사에서 영혼의 안식처를 찾았으니 말이다. 그것도 참사문비 앞에 자리 잡았다. 조금은 위로가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꽃같이 아름다운 나이에 짓밟힌 육체. 피폐해진 영혼. 환영받지 못한 귀향. 어떻게 보상해야 하나. 그들의 잘못도 아닌데. 힘없던 조선의 잘못인데. 죽어서도 설 자리가 없다면. 구천을 떠도는 영혼마저 쉴 자리가 없다면. 가해자 일본인마저 속죄의 글을 보냈는데. 가슴이 먹먹해진다. 늦게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떳떳해져야 한다. 동국사에 가면 고개를 숙여라. 아픔을 숨기고 있는 소녀상 앞에.
참사문비(懺謝文碑)
우리 조동종은 메이지유신 이후 태평양 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 포교라는 미명 하에당시의 정치 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 또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워 아시아인과 그들의 문화를 멸시하였으며 일본 국체와 불교에 대한 우월의식에서 일본문화를 강요하여 민족적 자긍심과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해 왔다. 게다가 불교적 교의에도 어긋나는 이런 행동들을 석가모니 세존과 삼국전등(三國傳燈)의 역대 조사(祖師)의 이름을 빌려 행해 왔던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거 해외 포교의 역사 속에서 범했던 중대한 과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아시아인에게 진심으로 참회하며 사죄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 해외 포교에 종사했던 사람만의 책임은 아니다. 일본의 해외 침략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그것을 정당화했던 종문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중략) 생각해 보면, 불교에서는 모든 인간이 불자로서 평등해야 하고, 어떤 이유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훼손되어서는 안 될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 말한다. 그런데도 석가모니 세존의 법맥 잇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는 우리 종문은 여러 아시아 민족 침략의 전쟁에 대해 상스러운 전쟁이라 긍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특히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 버렸는데,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할 때,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귀속할 곳을 찾기 마련이다. 가족, 언어, 민족, 국가, 국토, 문화, 신앙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장받았을 때, 비로소 사람은 안식을 얻는다. 정체성 보존은 사람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황민화 정책은 한민족의 국가와 언어를 빼앗았으며 창씨개명이라 칭하여 민족문화에 기반을 둔 개인의 이름까지도 빼앗아버렸다. 조동종을 비롯한 일본의 종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그러한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중국 등지에서는 종문이 침략 하에 놓인 민중에 대한 선무공작을 담당했으며 그중에는 자진해서 특무기관에 접촉, 첩보 활동을 행한 승려조차 있었다. 불법을 국가 정책이라는 세속적 법률에 예속시키고, 나아가 타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침탈하는 두 가지 잘못을 함께 범한 것이다.우리는 맹세한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침범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든 민족이든 마찬가지이다. (중략) 설령 제아무리 아름다운 장식을 하더라도, 또 제아무리 완벽한 이론으로 무장해 나타나더라도 어떤 하나의 사상 혹은 신앙이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다른 존재와의 공생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사상과 신앙을 거부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사상이나 신앙을 초월해 훨씬 엄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맹세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그리고 과거 일본의 억압 때문에 고통을 받은 아시아인에게 깊이 사죄하면서 권력에 편승하여 가해자 관점에서 포교했던 조동종 해외 전도의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하는 바이다.
1992년 11월 20일 조동종 종무총장 大竹明彦 한글번역: 군산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 표세만 동국사의 개산 기념일에 일본 조동종에서 발표된 참사문(발췌)을 조각한 비석을 동국사의 정원에 세우고 제막식을 봉행한다. 불기 2556(서기2012)년 9월 28일 일본의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 건립 |
동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혼을 잃어버린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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