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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예술의 집합체 ‘신파극’
대중문화 발전의 원동력이다.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의 소재를 가져다 사용했다. 원래는 영국 작품이다. 일본이 각색을 했다. 신파극의 성공은 변사에 달려있었다. 변사의 말 한마디에 객석이 들썩거렸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분노했고. 같이 즐거워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다. 장한몽이라고도 한다. 현재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단성사에서 공연했다.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내용은 이렇다. 대학생 이수일과 심순애는 결혼을 약속했다. 심순애가 변심했다. 돈 많은 김중배에게 시집을 간다. 이수일은 사랑의 배신에 몸서리를 친다. 피를 토하듯 울부짖는다. 피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돌아선 심순애는 매몰차기만 하다. 누구인가 말했다. 여자의 변심은 무죄라고. 죄의식도 없었다. 그 동안의 사랑은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스쳐간 바람일 뿐이었다. 이수일의 뜨거운 피눈물은 무용지물이었다. 심순애의 얼음장 같은 마음을 녹일 수 없었다. 두 남녀는 마지막 만남으로 이별을 고한다. 심순애의 결혼 전날밤 대동강 변에서. 변사의 처절한 음성이 장내를 휘감는다. “대동강 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 양인이로다. 악수논쟁 하난 것도 오날 뿐이오. 도보행진 하난것도 오날 뿐일세”. 관객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여기저기서 한 숨 소리가 난다.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만은 모두가 이수일이 된다. 신파극의 맛과 멋이다.
신파극에는 대중문화의 모든 요소가 포함돼 있다. 노래, 연기, 춤, 무대 등 모든 요소의 종합예술이다.
이름이 세련됐던 ‘스카라극장’
출범 때 이름은 달랐다. 약초(若草)극장이었다. 이름을 바꿨다. 수도극장으로. 해방 후에 일이다. 나중에 다시 바뀌었다. 스카라극장으로. 바뀐 이유가 재미있다. 극장명이 촌스럽다고 바꿨다.
버라이어티 쇼를 많이 했다. 1960년대 후반이었다. 이종철이라는 코미디언이 있었다. 능력이 뛰어났다. 명진, 박응수 콤비가 관객을 휘어잡았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종철의 재주를. 팔방미인이었다. 못 하는 게 없었다. 이종철의 후배들이 있다. 구봉서, 배삼룡, 송해 등이다.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도 공연됐다.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한국 코미디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스카라극장은 공짜구경하기에 적합했다. 도둑구경이었다. 몰래 들어가는 통로가 있었다. 화장실 창문으로 들어갔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나중에는 전용통로가 됐다.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는 법. 직원이 눈치를 챘다. 화장실에 대기를 했다. 창문으로 내려오는 즉시 잡아냈다.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엄청 많았다. 줄줄이 사탕이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모양새였다. 모두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인의 모습이었다. 큰 범죄를 저지른 듯했다. 직원의 일장연설이 시작됐다. 한 바탕 호통을 쳤다. 교장선생님 모습이었다. 완장 찬 모습에 위엄이 느껴졌다. 더 이상의 위해는 없었다. 낭만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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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극장 <사진=김병윤 대기자> |
대중문화예술의 집합체 ‘스카라계곡’
스카라극장 부근은 의미가 있다. 대중문화예술의 집합체다. 지금의 명보극장 건너편에 있었다. 대각선에 자리 잡았다. 대중문화예술인들은 말했다. 스카라 계곡이라고. 지금도 불리어 진다. 가수, 작곡가, 작사가, 영화제작자, 배우, 감독들이 모두 모였다. 집합장소였다. 다방 술집에서 머리를 맞댔다. 거리에서도 마주쳤다. 오며가며 만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무로와 합쳐서 불리어 졌다. ‘한국의 할리우드’라고.
서울의 극장 중에 기억해야 할 곳이 있다. 몇 곳이 기억돼야 한다. 부민관이다. 일제말기에 문을 열었다. 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에 있었다. 옛 국회의사당 건물이다. 시공관도 중요한 역사의 흔적이다. 명동에 있었다. 국립극장으로 활용됐다. 장소가 너무 좁았다. 지금은 남산으로 옮겼다. 시공관은 현재 예술극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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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보아트홀 <사진=김병윤 대기자> |
하세가와 극장도 있었다. 소공동에 있었다. 오래 운영되지는않았다. 이밖에도 우미관, 천일극장도 있었다. 우미관은 김두한의 본거지로 유명했다. 천일극장은 한일극장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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