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1.2조 투자 중 첫 3000억 2028년 양산
벨기에 산업화 검증→고객 승인 거쳐 후속 9000억 투자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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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울산시청 접견실에서 김상욱 울산시장(오른쪽 네 번째)과 이기수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 대표(오른쪽 다섯 번째)가 실리콘 음극재 생산공장 신설 투자 협약을 맺고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9.14 [연합뉴스] |
HS효성이 중국계 기업이 장악한 음극재 시장에 1조2000억원을 베팅했지만 승부처는 2만t짜리 공장이 아니다. 올해 벨기에에서 실리콘 음극재의 산업화 가능성을 검증한 뒤 2027년 글로벌 배터리 고객의 인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먼저다. 첫 5000t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져야 뒤따르는 9000억원의 증설도 의미가 생긴다.
21일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와 HS효성, 벨기에 유미코아(Umicore) 등에 따르면 올해 1~7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음극재 적재량은 35만4000t으로 전년 동기보다 29.4%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전체 성장률 21.7%를 웃돌았다. 비중국 지역이 전체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8.1%에서 40.5%로 높아졌다.
수요가 중국 밖으로 퍼지는 속도와 공급망 변화 속도는 다르다.
올해 2분기 기업 국적별 글로벌 음극재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점유율은 95.7%로 1분기보다 1.0%포인트 높아졌다. 한국 기업은 1.9%, 일본은 2.3%에 그쳤다. 비중국 지역에서 배터리 생산은 늘고 있는데 소재 공급은 오히려 중국 업체에 더 집중된 것이다.
SNE리서치는 “향후 경쟁의 핵심은 규제에 맞는 원산지와 상업 생산능력 확보”라고 분석했다. 비중국 생산투자가 진행되고 있지만 상당수 양산 시점은 2027년 이후다. 실리콘 음극재 등 차세대 기술력도 향후 공급업체의 지위를 가를 요인으로 꼽았다.
HS효성이 들어가려는 틈이 여기에 있다.
HS효성에너지솔루션코리아는 지난 14일 울산시와 투자협약을 맺고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에 2030년까지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2만t 규모 실리콘 음극재 생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투자는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3000억원을 투입해 2028년 1분기까지 연산 5000t 규모 공장을 짓는다. 이후 2029년 3분기까지 3000억원을 추가해 5000t을 늘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6000억원을 투입해 2030년 3분기까지 1만t을 추가한다.
한 번에 1조2000억원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보다 리튬 저장용량이 크고 에너지 밀도와 급속충전 성능을 높일 수 있지만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가 팽창하는 문제가 있다. 실험실에서 좋은 성능을 내는 것과 동일 품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결국 공장 크기보다 양산 수율과 배터리 셀사의 제품 승인이 먼저다.
HS효성은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술 개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유미코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실리콘-탄소 복합 음극재의 산업화와 상업화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유미코아는 벨기에 올렌(Olen)에서 관련 기술을 10년 넘게 개발해왔다. 양사가 설립한 엑스트라마일머티리얼스(Extra Mile Materials)는 유미코아의 기존 생산라인을 올해 말까지 산업용 데모 플랜트로 확대한다. 유미코아는 합작법인 지분 20%를 유지한다.
기술을 사서 바로 대규모 공장을 짓는 구조와는 다르다.
벨기에에서 산업 규모로 제조공정을 검증하고 고객사 인증과 상용화 작업을 진행한 뒤 울산에서 대량생산을 시작한다. 유미코아도 기술을 넘기고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합작사 주주로 남아 산업화 과정에 참여한다.
이 때문에 HS효성 실리콘 음극재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2028년 공장 완공보다 그 전인 2027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말 벨기에 데모라인이 가동되면 실제 산업 규모에서 제품 성능과 생산공정을 확인해야 한다. 이후 글로벌 배터리 업체의 평가와 인증을 통과해 2028년 울산 첫 5000t을 채울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첫 단계가 중요해진 이유는 후속 투자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이다.
전체 1조2000억원 가운데 첫 공장에 들어가는 돈은 3000억원이다. 나머지 9000억원은 2·3단계에서 집행된다. 회사가 후속 투자를 고객 인증 결과에 연동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단계별 증설 구조인 만큼 초기 상용화 성과와 수요 확보가 이후 설비 활용도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규제 환경도 시점과 맞물린다.
SNE리서치는 2027년 2월 유럽연합(EU)의 배터리 여권 의무화가 시작되면 소재 단계에서도 공급망 정보 관리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특정 기업의 수주를 보장하는 제도는 아니지만 중국 밖에서 추적 가능한 소재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배터리 업체에는 공급처 다변화의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중국 기업 점유율 95.7%와 HS효성이 진출하는 실리콘 음극재 시장을 직접 비교해서는 안 된다.
95.7%는 천연·인조흑연 등을 포함한 전기차용 음극재 전체 시장의 기업 국적별 점유율이다. 실리콘 음극재 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고 상용화 단계도 다르다. HS효성이 당장 중국 기업이 차지한 기존 흑연 물량을 대체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아직 굳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기회다.
기존 흑연계 음극재에서는 중국 기업이 규모와 원가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같은 방식으로 후발주자가 가격 경쟁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 반면 실리콘 음극재는 고객 인증과 양산기술 경쟁이 진행 중이다. 차세대 소재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전에 상업생산 이력을 확보하면 비중국 공급업체가 새로 들어갈 여지가 있다.
위험도 같은 곳에 있다.
울산에 연산 2만t 설비를 갖춰도 고객 승인이 늦거나 양산 수율이 기대에 못 미치면 생산능력이 곧 매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벨기에 데모 플랜트에서 공정 안정성을 확인하고 글로벌 셀사 인증을 먼저 확보하면 울산 증설은 고객 없는 선행투자보다 수요를 따라가는 투자에 가까워질 수 있다.
HS효성의 1조2000억원 투자를 볼 때 그래서 2만t이라는 최종 생산능력보다 먼저 봐야 할 숫자는 첫 5000t을 채울 고객이다.
중국 밖 음극재 수요는 이미 전체 시장보다 빠르게 늘고 있지만 공급망은 아직 중국 기업에 더 집중되고 있다. HS효성이 이 간극에 들어가려면 울산에 공장을 크게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벨기에에서 검증한 기술을 고객 승인으로 바꾸고, 그 주문을 울산의 안정적인 양산으로 연결해야 한다.
HS효성의 실리콘 음극재 사업에서 2027년이 중요한 이유다. 1조2000억원의 승부는 2030년 2만t 공장이 완성될 때가 아니라 그 전에 첫 고객과 양산 조건을 확보하는 순간부터 갈리기 시작한다.
토요경제 / 김지영 기자 jykim.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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